“규장각의 흥망, 나라의 운명과 직결”

  • 입력 2008년 8월 25일 03시 00분


규장각 230년의 역사를 정리한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그는 “국가 인재 양성과 학술 연구를 주도한 규장각의 역할은 문화 가치의 시대인 21세기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규장각 230년의 역사를 정리한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그는 “국가 인재 양성과 학술 연구를 주도한 규장각의 역할은 문화 가치의 시대인 21세기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도. 1776년 설립 당시 규장각은 창덕궁 주합루(그림 중앙 오른쪽 건물)에 있었다. 주합루 왼쪽 건물인 서향각에도 규장각 도서를 보관했다. 사진 제공 지식산업사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도. 1776년 설립 당시 규장각은 창덕궁 주합루(그림 중앙 오른쪽 건물)에 있었다. 주합루 왼쪽 건물인 서향각에도 규장각 도서를 보관했다. 사진 제공 지식산업사
■ 230년 역사 정리 연구서 펴낸 한영우 교수

《“국가의 품격은 학문이 말해줍니다. 우리는 한국학 연구가 미흡하다 못해 선조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풍조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전통과 단절되니 정치도 경제도 경박해요. 이런 때일수록 국가적 학술 연구, 인재 양성 기관이었던 규장각의 역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1776년 창덕궁 주합루에 세워져 2006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거듭나기까지 230년 규장각의 흥망성쇠를 정리한 책 ‘문화정치의 산실 규장각’(지식산업사)을 펴낸 한영우(70)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를 21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규장각의 역사를 고찰한 책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1992∼1996년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낸 그는 “문화 가치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21세기에는 국가적 싱크탱크로 조선 최고 학자를 길러낸 규장각 같은 기관이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장각은 젊은 문신의 재교육을 담당하고 임금과 문신이 학문과 정책을 토론하는 종합 학술 기관이었다.

규장각 소장 도서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승정원일기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이 3건이나 있을 정도로 선조들의 기록 문화가 남아 있지만 이에 대한 본격 연구는 미흡하다.

“규장각은 장서가 20만 권에 이르는 한국학의 최대 보고(寶庫)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제대로 고찰한 해제는 극히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서양 학문을 무작정 수입할 줄만 알았지 우리 학문의 전통에는 무지해요.”

한 교수는 “학문의 토착화가 이뤄지지 못해 학문이 우리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인문학의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 일부에서 조선을 가난하고 망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왕조로 얕잡아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규장각은 조선의 철저한 기록 문화를 보여주는 국립도서관만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규장각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국가 최고의 두뇌 집단이 모인 곳이었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리더의 비전을 뒷받침할 주요 인재를 양성했다.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다. 규장각은 젊은 문신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시험을 치러 성적 우수자는 승진시키고 부진한 자는 벌을 줘 경쟁을 유도했다.

한 교수는 19세기 조선 왕조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세도 정치로 규장각의 인재 육성 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규장각의 흥망이 국가의 성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에 인재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인재의 잠재력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 국가적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겁니다.”

한 교수는 현재 서울대 부속기관인 규장각을 독립 국가기관으로 전환한 뒤 집중 지원해야 한국학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20만 권에 이르는 장서 중 국보가 7종, 보물이 10종‘밖에’ 안 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규장각 소장 도서의 가치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것.

“다른 나라라면 이런 기관에 수십 명의 전임교수를 두고 연구했을 거예요. 그런데 규장각에 현재 전임교수가 몇 명인지 아세요? 단 1명도 없습니다.”

규장각의 역사가 노학자에 의해 비로소 정리된 것도 한국학 연구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규장각 역사처럼 대충 아는 듯하면서도 엄밀하게 연구하지 않은 분야가 한국학에 많습니다. 그런 분야를 찾아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불과 100년 전 우리 고전을 읽지 않으면서 최고 지성 행세를 하는 우리 학문 행태를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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