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버려진 것들의 재발견

  • 입력 2008년 8월 26일 03시 04분


스스로 하찮다 여기는 모든 존재들을 위하여

녹색 식물처럼 싱싱한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앤티크풍 대형 샹들리에. 부엉이 오브제로 장식된 조명등이 밋밋한 공간을 고급스럽게 연출한다. 그런데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자리 잡은 곳은 인테리어 전시장이 아니라 갤러리. 그러고 보니 초록빛으로 빛나는 조명이 조금 낯설다. 다시 들여다본다. 크리스털이 아닌 날카로운 술병 파편으로 만든 샹들리에였다.

아폴론 등 그리스 신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대형 작품들. 회화 같은데 모두 사진이다. 바짝 다가섰을 때에야 쓰레기를 배열해 고전의 명화를 재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은 녹슨 쇠 잡동사니로, 신체의 음영은 흙으로 표현했다. 형형색색 플라스틱 벌레 장난감을 절묘하게 배치해 ‘그려낸’ 장미, 잡지 조각을 오려내 만든 펠레 초상도 벽에 걸려 있다 .

샹들리에는 베니스와 광주 비엔날레 등을 비롯한 국내외 전시에서 주목받아온 미술가 배영환(39) 씨의 신작이며, 사진은 브라질 출신의 국제적인 사진가 빅 뮤니츠(47)의 작업이다. 서울 종로구 화동 pkm갤러리가 마련한 배 씨의 ‘insomnia(불면증)’전(9월 20일까지, 02-734-9467)과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빅 뮤니츠 전(31일까지, 02-720-1020)에서 각각 볼 수 있다. 둘 다 새로운 표현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전시란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버려진 것, 쓸모없는 것의 재구성

‘나는 확신한다. 버려진 모든 것은 그것 자체로 저항한다는 것을.’

배 씨는 장 주네의 ‘도둑일기’에서 나온 한 구절을 증명하려 한다. 밤새 길거리에 버려진 소주와 맥주, 와인병과 이를 깨뜨린 파편으로 재구성한 샹들리에. ‘럭셔리와 궁상맞음’이란 이중적 의미가 포개진 작업을 통해 작가는 2008년 한국 사회를 독해한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도 여전히 불안과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불면증 사회를 그려내는 것이다.

나무 창살 안에 가둔 대팻밥과 규격에 안 맞는 자로 만든 설치 작업도 신선하다. 깨진 유리 조각이나 규격에 안 맞는 자는 평균적 사고에 갇힌 사람들을 상징한다. “모든 존재는 자기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균질화된 사회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강요한다. 우리가 따라가려 애쓰는 ‘표준’을 통해 존재의 근원, 정체성을 돌아보고 싶었다.”(배영환 씨)

온갖 잡동사니로 만든 형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빅 뮤니츠의 작업 역시 이질적 소재 및 이미지의 충돌과 조화란 측면에서 흥미롭다. 그는 존재하는 풍경이나 사물을 찍지 않는다. 퍼즐 먼지 초콜릿 소스 장난감 등 사라지거나 파손되기 쉬운 것, 하찮은 것들로 명화나 익숙한 이미지를 만들어 촬영한 뒤 대형 사진으로 인화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함께 살아간다’는 작가의 철학은 일상의 재료를 활용해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멀리서 봤을 때 확실했던 이미지들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모호해진다. 기발한 아이디어 안에 진지함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명화나 유명인의 얼굴 등 익숙한 이미지들을 차용해 예술의 현실 재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촬영을 마친 뒤 공들여 만든 제작물을 폐기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아쉬움, 영속적으로 보존하려는 의도를 동시에 드러낸 작업방식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연금술사 같은 아티스트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이란 없다. 거칠고 지저분한 것에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범상한 것에서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상식을 뒤집고, 익숙한 것을 비틀어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안겨준다.

두 전시도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재료나 버려진 것을 활용해 메시지를 전하는 ‘반전’을 보여준다. 삶 속에 녹아 있는 불안과 긴장을 응시하고 현실과 환영,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새로운 표현 영역에 도전하는 다양한 실험들, 그 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세계로 가는 길을 만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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