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중국은 이번 올림픽 준비의 일환으로 수년전부터 건축, 음악, 미술 등 각종 예술 분야의 세계적 거장들에게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 부어왔다. 건축을 예로 들어보면, 중국판 오페라 하우스인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을 설계한 프랑스의 폴 앙드뢰, 꽈배기 모양의 165m 높이의 CCTV 타워를 설계한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 ‘그린픽스’라는 미디어 아트 전용스크린을 설계한 이탈리아의 시모네 조스타라 등 오늘날 현존하는 건축 대가들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지원을 해 온 것이다.
미술 또한 예외는 아니다. 베이징 관광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조양구 따산스에 위치한 ‘798 예술구’는 원래 군수공장 지역이었으나 2001년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의 이전과 함께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문화거리로 변모한 곳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곳에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중국 미술 컬렉터 가이 울렌스가 만든 ‘울렌스 현대미술센터’를 위시한 대규모 미술관 설립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수 십여 개의 외국의 갤러리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옆 거리인 797과 799구역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의 대규모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된 이 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사실 역사적으로 예술과 국가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애증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지창조’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가 그것을 부탁한 교황 율리우스2세와의 불화 속에서 탄생했다는, 심지어 교황의 지팡이로 구타당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문제는 1966년 문화혁명 발발부터 1989년 천안문사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대부분 작가들이 예술은 국가 정책에 봉사해야한다는 당국의 강압에 저항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오늘날 미술작가들이 국가의 시장개방 정책과의 힘겨운(?) 화해, 때로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를 들어 티베트 사태와 같은 인권문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발언은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예술을 자본과 국가라는 틀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론을 말하자면, 예술의 참된 역할은 이번 베이징올림픽의 슬로건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과는 반대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에 반항하는 다양한 세계, 다양한 꿈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