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 의병장 홍범도(1868∼1943·사진) 장군이 말년에 극장 수위와 정미공장 근로자로 일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장편소설을 집필 중인 고려인 작가 정장길(65) 씨는 홍 장군 탄생 140주년(27일)을 하루 앞둔 26일 홍 장군 특집기사를 다룬 1968년 8월 27일자 ‘레닌기치’ 신문을 공개했다.
현 고려일보의 전신인 레닌기치는 1938년 창간돼 1990년 폐간 때까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발행된 신문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홍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휘하 병력 300명을 이끌고 이르쿠츠크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에 대위로 편입됐다. 레닌기치 기자로 일했던 정 씨는 “홍 장군이 ‘일단 살아남아 항일투쟁을 계속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홍 장군은 25군단 조선인여단 독립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했으나 고려인 배제 정책에 따라 1923년 군복을 벗었다. 이후 연해주에서 콜호스(집단농장)를 차려 일하다 1937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됐다.
홍 장군은 크질오르다에 있는 고려극장에서 야간 수위 생활을 했으며 1943년 눈을 감기 직전엔 정미공장 근로자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장군이 숨진 직후인 1943년 10월 27일자 레닌기치에는 함께 근무했던 ‘정미공장 일꾼 일동’ 명의의 홍 장군 부고가 실렸다.
정 씨는 “한국의 일부 백과사전에 ‘홍 장군이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다 사망했다’고 돼 있는 등 홍 장군의 사망 경위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