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년간 창덕궁의 사무관으로서 각 부국을 두루 역임하면서 궁 안의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으며, 특히 생사를 다툴 때 황제와 황후의 시종이 돼 측근으로서 바로 옆에서 모신 일도 있다. 아마도 일본인으로서 외국 황제의 시종이 된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日궁궐감시인이 본 왕족과 친일파
저자 곤도 시로스케는 1907∼1920년 조선 황실 궁내부(왕실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아)에서 관리를 지낸 일본인이다.
그는 이 경험을 일제강점기 발행된 ‘조선신문’에 ‘창덕궁의 15년’이란 제목으로 연재했고 1926년 8월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저자는 궁내부를 보좌하기 위해 등용됐다고 하지만 사실 일제가 궁내부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인식으로 쓰여 한국 독자를 화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이토 히로부미가 영친왕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아간 역사적 사실을 “왕세자의 재능을 성장시키기 위한 이토 공작의 지성지순(至誠至純)”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러나 15년간 조선 황실에서 일하며 순종의 시종까지 담당한 저자가 일기 형식으로 쓴 이 책은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인 친일파 윤덕영과 이완용, 창덕궁을 일본 천황에게 헌상하려던 이완용을 꾸짖은 순종 등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에 고뇌하는 고종, 창덕궁과 덕수궁으로 생활공간이 제약된 고종과 순종의 고립감도 드러난다.
상궁을 선물로 포섭하려 한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도 적혀 있다. 저자는 그의 ‘노련함’을 극찬한다. “이토 공작은 노련한 대정치가였던 만큼 여성의 힘을 이용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내가 알기로 이토 공작은 도쿄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마다…반드시 상궁에게도 고운 옷감이나 시계, 목걸이와 같은 물품을 선물했기에 궁중에서 이토 공작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그러나 역자는 이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가 궁녀들을 포섭하기 위해 선물 공세를 편 것은 사실이지만 국권 탈취 음모에 분개한 궁녀가 많았고 왕세자(영친왕)를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인질로 잡아갈 때 궁녀들이 분노했다”고 말한다.
1910년 국권침탈 전 일본 경무총장이 창덕궁을 시찰하는 등 조선 황실의 저항에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아카시 경무총장은 창덕궁을 관람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순종이 머무는 어전까지 염탐하다가 순종에게 들킨 뒤 “오늘 들켜서 참 난처하구먼, 더위보다 국왕께 들키는 바람에 오히려 더 땀이 났단 말이야”라고 말한다. 또 궁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이때 일본 경찰에 비밀리에 넘기는 과정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친일파인 윤덕영이 순종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종을 압박하는 과정을 “신랄한 책략을 동원해 옛 신하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무리한 시도까지 하면서…그 수단의 신랄함, 냉혹함, 거기에 끈질김은 참으로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 당시 윤덕영의 행적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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