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7시 반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74석 규모의 아담한 소극장에서 황병기(72) 국립관현악단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가 해설하는 ‘사랑방 음악회’는 공연마다 전석 매진 행렬을 이룬다. 한 동양화가는 ‘사랑방 음악회’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그려 보내오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저음 해금, 개량 대금, 25현 가야금, 장새납(태평소를 개량한 악기) 등 개량 국악기를 이용한 창작국악곡이 연주됐다. 황 감독은 “1968년부터 개량된 국악기만 사용해 온 북한은 대금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서양의 플루트 비슷하게 만들고, 저음 해금을 서양의 첼로 비슷하게 변화시켰다”며 “반면 한국은 개량을 하더라도 악기의 모양이나 재질 등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양 클래식 음악의 전통은 이야기 없이 음악만 들려주는 것이지만 산조나 가야금 병창 등 우리 전통음악에서는 대개 연주에 앞서 이야기를 먼저 했다”며 “가야금의 명인 심상건 선생은 늘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시작해 둥둥 가야금을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나는 해설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걸 듯 청중을 보고 즉흥적으로 해설해야 새롭다”고 말했다. 그의 해설 음악회는 발레 붐을 불러왔던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의 ‘해설이 있는 발레 이야기’와 같은 히트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9월 5일부터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내 남산국악당에서 ‘황병기 명인의 산조이야기’(3월) 후속 시리즈로 ‘황병기 명인의 창작이야기’를 열 예정이다.
‘… 창작이야기’는 1960년대 초기작인 ‘침향무’부터 중기의 ‘비단길’, 후기의 ‘달하노피곰’ 등 그의 가야금 창작곡에 얽힌 사연과 함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또한 대금과 거문고, 성악, 김명숙 무용단과 함께하는 공연도 이어진다. 황 감독은 1975년 초연됐던 ‘미궁’을 성악가 윤인숙 씨와 함께 직접 연주한다.
“‘미궁’은 절반만 악보로 돼 있고, 절반은 제 몸속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대신 연주할 수가 없어요. 1975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할 때였는데 아방가르드 음악이던 ‘미궁’도 초연 후 연주를 금지당했지요.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소동이 벌어졌지요.”
그는 “미술이나 문학에서 새로운 작품이 창작되는 것처럼 국악도 새로운 음악을 창작해야 한다”며 “국악은 서양의 7음계보다 적은 5음계이지만, 그만큼 여백이 넓어 한 음을 갖고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게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사랑방 음악회=12월까지 매월 넷째 주 목요일 오후 7시 반. 2만 원, 02-2280-4115 ▽황병기 명인의 창작이야기=9월 5일∼10월 17일 금요일 오후 7시 반. 1만, 2만 원. 02-2261-051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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