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석상서 대통령 사과’ 거듭 요구
2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는 불교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주최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6만 명)이 참여해 성난 불심을 드러냈다.
이 숫자는 이 대회를 사실상 이끈 조계종이 1962년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다. 연중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불자가 모이는 부처님 오신 날 연등축제 참가자가 5만 명 안팎이다.
봉행위원회 대변인 승원 스님은 “사회 현안과 관련된 집회에 20만 명의 대중이 모인 것은 불교 170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정부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상처받은 불심을 제대로 읽고 종교와 사회평화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은 물론 인근 덕수궁 대한문과 프레지던트호텔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타고 온 관광버스로 을지로와 태평로 등 인근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양산 통도사와 경주 불국사, 속리산 법주사, 구례 화엄사 등 대형 사찰에서 단체로 온 차량이 많았다.
이날 대회장은 정부의 종교 차별을 비판하는 성토장이 됐고 대회가 평일 오후에 열려 중장년층 여성 불교신도가 많았다.
대구에서 신도들과 함께 상경했다는 주부 정모(58) 씨는 “불교계를 대표하는 지관 총무원장의 차량까지 검색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성난 불자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는 낮 12시 범패와 합창 등 식전행사에 이어 오후 2시 5분경 종을 5번 울리는 것으로 개회했다. 같은 시각 전국의 사찰에서는 이 대회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범종을 33번 타종했다.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대회가 개막되자 “정부는 종교 탄압을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인 홍파 스님은 대회 시작을 알리는 고불문(告佛文)을 통해 “정치와 종교 분리의 헌법정신이 지켜져 국운 융성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욱 빛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천태종 경천 스님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종교 차별 행위는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민의 권리에 관한 문제”라며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확고한 종교 차별 방지대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국 비구니회 소속의 진명 스님은 발원문에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으로 밝혀온 한국 불교가 능멸당한 것을 진심으로 참회한다”며 “사부대중의 하나 된 염원이 위정자들의 성찰과 각성으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했다.
오후 4시 20분경 참가자들은 ‘공직자의 종교 차별 대한민국 무너진다’ ‘불자들의 힘으로 종교 차별 막아내자’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앞세우고 서울광장과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조계사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날 참가한 스님 1만여 명 가운데 300명이 잘못을 뉘우치고 계율을 지킨다는 뜻에서 팔에 심지를 놓고 태우는 연비의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참석자가 몰려 취소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대회 해산식인 회향식에 나와 “여법하게 대회를 봉행해준 모든 대중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차차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