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하면 ‘우유’가 생각나고, ‘핀란드’ 하면 ‘자일리톨 껌’이 떠오르는 당신. 그렇다면 이들 나라를 하나로 엮는 ‘스칸디나비아’란 말에는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혹시라도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다 내놓은 답이 ‘바이킹의 고향!’과 같은 것이라면, 당신은 21세기 디자인 트렌드 파악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2008년을 살아가는 당신의 머릿속에 스칸디나비아와 함께 떠올랐어야 할 단어는 ‘스타일’이다. 최근 세계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북유럽 디자인에 열광하고 있다. 특히 가구 디자인 분야에 있어 그 영향력은 꽤나 강력해서,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복잡한 장식 배제하고 목재 본연의 결과 색감 극대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지역 국가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디자인 경향을 일컫는다. 날씨가 추운 이들 지역은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긴 만큼 예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이 발달했는데, 특히 울창한 삼림이라는 자연환경과 맞물려 가구 분야가 발달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스칸디나비아풍 가구의 특색은 ‘단순미’, ‘자연미’, ‘색채미’, ‘기능미’ 등으로 요약된다. 복잡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최상급 목재 본연의 결과 색감을 극대화하는 이 지역 가구는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한다.
여기에 북유럽의 청명한 하늘과 푸른 숲을 닮은 선명한 색채의 패브릭 혹은 가죽 소재가 덧대어져 스칸디나비아 가구 특유의 개성이 완성되는데, 가구에 쓰이는 패브릭은 그 소재와 색의 종류만도 수천 가지에 이를 정도다.
앤티크 가구 전문가인 김명한 aA디자인뮤지엄 대표는 “담백한 디자인의 북유럽 가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트렌디하고 어디에 놓아도 멋지게 어울린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목재 가공력과 직조(織造) 기술로 만들어져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북유럽 직조 기법에 따라 제작되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패브릭은 감촉이 좋으면서도 밀도가 높아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보풀이 일지 않고 내구성이 좋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유행 안 따라도 사물 고유의 특성 살려
정제미와 실용성이 모두 강조되는 북유럽 가구 디자인은 산업화 이후 새롭게 등장한 플라스틱, 메탈, 고무 등 신소재와 ‘찰떡 궁합’을 이루며 1900년대 중반 이후 모던 디자인의 중심을 이끌어 나갔다. 1950, 60년대를 대표하는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 베르네르 판톤은 당시 강렬한 원색의 플라스틱을 통째로 의자 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판톤 의자’를 선보였다. 판톤 의자는 기존에는 전혀 없었던 소재와 형태의 독창성 때문에 제품 디자인으로 치자면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만큼이나 가구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덴마크 출신의 또 다른 세계적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은 각각 달걀과 백조, 개미다리를 닮은 ‘에그(egg) 체어’, ‘스완(swan) 체어’, ‘개미 의자’를 선보여 장식미와 기능미를 모두 살린 현대적 가구 디자인의 대표적 아이콘을 제시했다.
대단한 디자이너는 핀란드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더불어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계적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후고 알바르 헨리크 알토는 건축, 가구, 조명기기 등 생활 전반의 사물에서 조형미와 설계력이 뛰어난 혁신적 디자인들을 내놓았다.
국립 덴마크 디자인스쿨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북유럽의 디자인은 ‘더하고 꾸미는’ 이탈리아 등의 디자인과 달리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최대한 빼 나가는’ 미니멀 디자인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사물 고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는 디자인 특성이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특색은 최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북유럽 지역 신진 디자이너의 가구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서울도, 뉴욕도, 호텔도, 카페도 ‘오! 스칸디나비아’
서양이나 일본보다는 늦은 편이지만 국내에도 최근 몇 년간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가구들이 꾸준히 소개돼, 올해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북유럽식 디자인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초 서울 예술의 전당은 베르네르 판톤의 전시회를 열어 일반 관람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올 3월 문을 연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10 꼬르소 꼬모’는 매장 곳곳에 유명 북유럽 디자이너의 오리지널 가구를 배치해 고객의 고급 디자인 감성을 공략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달 에그 체어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열어 고품격 디자인 공간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신라, 파크하얏트, 워커힐 등 유명 특급호텔들도 2, 3년 전부터 앞 다퉈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이며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붐에 한몫하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등 세계적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는 디자인 중심 초고급 호텔(부티크 호텔)에서도 마찬가지다. 북유럽 스타일링 경향은 카페 디자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종로구 삼청동, 홍익대 일대에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을 표방하는 가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모던한 북유럽 디자인의 ‘cafe’ S’를 직접 디자인해 운영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혜정 씨는 “스칸디나비아 가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면서 최근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북유럽풍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고객이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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