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탄자니아 정부는 세계은행의 자금을 받아 모로고로에 신발공장을 세웠다. 내수뿐 아니라 유럽으로 수출할 만큼 큰 생산시설을 갖춘 공장이었다. 하지만 공장은 생산능력의 5% 이상 가동된 적이 없었고 한 켤레의 신발도 수출하지 못했다. 이 시기 탄자니아 정부가 돈을 댄 대부분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공장은 1990년 결국 문을 닫았다.
빈국들은 왜 항상 가난한가. 잘사는 나라의 성공한 정책을 따라 해도 왜 실패하고 마는 것일까.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파이낸셜타임스 고정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빈국이 선진국의 제도보다 기술을 수입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빈국이 선진국의 혁신적 정책과 과학적 지식을 곧바로 채택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생산은 산업부문에서 자본과 노동만의 산물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빈국이 ‘회사와 산업, 정부(의 수준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로 규정된 제도를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과 같은 조건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노동을 투입해도 선진국의 앞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로고로 신발공장이 망한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우선 돈이 투입돼 현대식 공장이 지어졌지만 장비 유지보수는 부실했고 부속품도 모자랐다. 직원들은 공장에서 물건을 훔쳐갔다. 서구식으로 알루미늄 재질 벽을 친 공장도 환기장치가 없어 현지 기후에 맞지 않아 일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저자는 남미의 종속이론에 대해서도 ‘제도의 차이’를 간과했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같은 주변부 국가인 호주는 발전하고 아르헨티나는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중심부와 주변부의 종속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양국의 경제와 사회, 정치 제도들의 관계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일정한 조건에서 효율성을 발현하는 시장 경제의 힘을 분석하는 데서 나아가 현재 상황에서 시장의 한계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자유시장경제 모델’이 지나치게 시장을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모델과 달리 시장에서 정보는 불완전하다. 인간은 아는 사람과 거래하고 싶어 한다. 또 증권시장은 사업의 여러 분야 간에 자본을 분배하고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제도라기보다 정교하고 전문적인 투기장으로 더 잘 설명된다.”
저자는 완전경쟁시장 개념에 대해 자신이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소재로 즐겨 사용한다며 이탈리아의 산레모 꽃시장에서 상인들이 거래하는 방식을 들어 설명하는 등 세계 각국의 사례를 풍부하게 들고 있다.
‘문화와 번영’이라는 책의 원제처럼 저자는 나라마다 문화에 맞는 발전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특정 문화가 시장경제 발전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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