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단 한 명도 8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전원 탈락하는 악몽은 제6회 춘란배 8강전 이후 2년 만의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은 온통 축제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이번 ‘쾌거’에 대해 ‘중국바둑 실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는 증거’라며 한국의 전멸사실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많은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중국은 고작 5명이 출전해 거둔 성적’임을 강조하며 ‘중국이 도요타덴소배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고 환호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그것도 세계바둑계의 라이벌 중국에게 완패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기사들을 철저하게 연구한 것 같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타도한국’을 외치며 한국 강자들의 허와 실을 깊이 파헤쳐 왔고, 그 노력들이 슬슬 결실을 맺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프로기사들은 ‘한국기전의 지나친 속기화 경향’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대부분의 기전들이 1시간 이내의 속기전입니다. 이는 ‘빠른 승부’를 원하는 팬들의 입맛과 TV기전의 성행 탓이지요.
속기전이 나쁠 일이야 없지만 대부분의 기전이 속기전으로 치러지다 보니 프로기사들 역시 평소 속기훈련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속기는 치밀한 수읽기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따라서 프로기사들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감각이 증강하는 반면 집요하게 읽고 버티는 수읽기의 ‘본능’이 퇴화하게 됩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기사들은 번번이 중국기사들에게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한 프로기사는 “한국기사들은 후반전에서 ‘감’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기사들은 정확히 둬서 승리를 가져갔다. 끝내기에 초점을 맞춰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바둑의 강점이었던 ‘공동연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한국바둑의 약화에 ‘한 점’ 보탠 것으로 여겨집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연구회의 이름 아래 기사들이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했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개인적 친분에 의한 소규모 연구 위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올림픽과 함께 상승기세를 한껏 탄 중국을 상대로 한국은 올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통합예선에서 16장의 본선티켓 중 중국이 10장을 확보한 삼성화재배를 비롯해 ‘바둑올림픽’ 응씨배, ‘한중일 바둑삼국지’ 농심신라면배 등이 줄줄이 남아있습니다.
‘두뇌올림픽’이라는 세계마인드스포츠대회도 올해 처음으로 열립니다. 힘 빠진 한국바둑, 보약이라도 한 첩 달여 먹고 힘내야겠습니다.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