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을까. 있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계창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수연(11) 양, 동권(10) 군, 로운(7) 군 삼남매. 이들은 방학 때도 학교에 나오려고 해 선생님이 애를 먹는다. 할머니 김순임(70) 씨와 함께 사는 이들은 아침을 먹은 후면 학교로 달려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놀러 갈 곳도 없어요. 방학 때 집에만 있으면 지루한데 학교 도서관에는 읽을 책이 가득해 신나요.”
지난달 13일 계창초교에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NHN이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의 130번째 도서관이 개관했다.
개관식에 참석한 할머니와 삼남매의 기쁨은 남달랐다. 계성면은 지역 주민 대부분이 농업이나 영세 식당 운영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은 결손가정 아이들이다. 10여 년 전 부모님의 이혼 후 할머니 손에서 자란 삼남매에게 학교는 유일무이한 배움터이자 놀이터다.
김 할머니는 양파를 뽑거나 고추 따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 할머니는 “매일 ‘텔레비전 보지 말고 책 읽어라, 공부를 잘해야지 훌륭한 사람 된다’고 하면서도 해준 게 없어 마음 아팠다”면서 “훌륭한 도서관이 생겨 나 대신 아이들을 키워주니 고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이 학교를 졸업한 맏손녀 경현(13) 양까지 네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김 할머니는 “한창 부모에게 응석 부리며 자랄 나이에 고생하는 게 가엾어서 많이 울었다”며 “그래도 공부 잘하며 밝게 자라주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연 양은 마을도서관 개관식 기념 글짓기에서 ‘책 읽는 여우’로 우수상을 받았다. 5학년 부반장인 수연 양이 이 책을 읽으면서 키운 꿈은 무궁무진했다. ‘여우 아저씨가 맨 처음엔 나쁜 짓을 했는데 교도소에 간 뒤 그렇게 멋진 분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얼마든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저에게 알려준 것 같습니다. 저도 왠지 작가가 되고 싶고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되고 싶어지네요.’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입학했던 막내 로운 군은 누나가 추천해 준 동화책을 소리 내 읽는 맛에 빠지고 있다.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가 되는 게 장래 희망. 할머니 말씀이라면 고분고분한 동권 군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할머니가 경찰 하라고 했어요. 책 열심히 읽고 경찰 될래요”라고 말했다.
학교 마을 도서관 개관식으로 책 3000여 권을 지원받은 계창초교의 문영숙 교장은 “학교 스쿨버스로 도서배달 서비스를 펼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도서관을 개방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이용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용수 창녕교육장, 김충식 창녕군수, 박대현 경남도교육위원회 의장, 박상제, 강모택 경남도의회 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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