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버려라”

  • 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20세기 모더니즘의 마지막 거장,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은 의사가 환자를 보듯 건물을 살펴야 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애정만 가져서도 곤란하죠.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건축가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75) 포르투대 건축학부 교수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시자 교수의 건축물은 장식을 절제한 간결한 형태와 균형 잡힌 공간 구성이 특징이다. 포르투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아베이루대 도서관, 리스보아 엑스포 파빌리온 등이 대표작이다. 1992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과 200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에도 안양예술공원 알바루시자홀, 파주출판도시의 미메시스뮤지엄 등 그의 작품이 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2010년 세워질 아모레퍼시픽 연구동도 시자 교수가 설계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시자 교수는 ‘현대 생존한 근대 모더니즘 건축 사조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그가 만든 공간은 랜드마크로 돋보일 수 있는 외형적 화려함보다 사용자를 배려한 기능을 추구한다.

미메시스뮤지엄은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김준성 핸드건축 소장과 공동 설계한 이 박물관은 용도별로 다양한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중앙 코어를 중심으로 촉수처럼 밖으로 뻗어 나온 공간들은 기능적 요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외형의 단조로움을 없앤 사례다.

시자 교수는 2010년 8월에 완공될 연세대 새 경영관 설계에서는 기능성과 연속성을 함께 고민했다.

“연세대 캠퍼스는 포화 상태의 공간입니다. 새 경영관은 그 북쪽 끝, 조금은 소외된 공간에 세워지죠. 독립된 기능을 가지면서도 전체 캠퍼스와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시자 교수는 나란히 나뉘어 선 강의동과 연구동 사이의 중정(中庭)에서 해법을 찾았다. 두 건물 사이의 중정이 캠퍼스와 경영관을 연결하는 ‘트인 공간’ 역할을 하는 것. 이 중정을 통해 새 경영관 건물은 오랜 역사를 가진 캠퍼스와 소통하는 연속성을 얻는다.

전체와의 조화보다 튀는 외관을 강조하는 현대 도시 건축에는 생경한 이야기다. 모교인 포르투대 건축대, 아베이루대 도서관 등 학교 건물을 많이 설계한 시자 교수는 ‘건축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김종규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대표작인 세랄베스 현대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그릇’이라는 미술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건물”이라며 “미술관 건물 자체가 작품처럼 보이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 현대건축 경향과 다른,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현대건축에서는 ‘모든 것은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보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텐데 말이죠. 건축물은 왜 세워지나요. 유명해지기 위해? 왜 건축가가 되려 하나요. 유명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입니까? 모든 건물이 랜드마크인 도시는, 사실 랜드마크가 없는 도시가 되겠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건물의 본질이 조화를 이루도록 균형을 잡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시자 교수는 3일 오후 5시 연세대 경영대 대우관에서 건축철학과 작품을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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