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둔 이맘때면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내놓은 초고가(超高價) 선물세트에 입이 딱 벌어집니다. 굴비 10마리가 어지간한 직장인 한 달 월급과 맞먹으니 말이죠.
과연 이런 선물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불과 2, 3년 전만 해도 2000만∼3000만 원 상당의 고급 위스키나 코냑 제품이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올해는 좋지 않은 경기 상황을 감안해 그나마 가격대를 낮췄다는군요.
반면 상대적으로 지갑이 가벼운 사람들이 찾는 대형마트는 최근 불경기를 반영해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선물을 산 뒤 거스름돈 100원까지 챙겨갈 수 있는 9900원짜리 선물세트를 크게 늘렸습니다.
백화점에서 단체 선물세트를 주문하는 법인고객도 대기업이 대부분이고 중소기업 고객들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합니다. 서울 가락시장에는 일반 제품에 백화점 포장지만 입힌 ‘짝퉁’ 제품까지 등장했다네요.
추석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처럼 유통업계가 준비하는 추석 대목은 지난해와 사뭇 달라졌습니다. 불황에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올해 추석 유통업계의 명절 특수(特需)는 과연 기대하기 힘들까요. 한 백화점 상품기획자는 “지난 10년간 명절 때마다 경기가 어렵다는 전망에도 매출이 줄어든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백화점들의 올해 추석 선물 예약판매는 와인과 정육 선물세트를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평균 20∼4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진열해놓고 팔리기만 기다린다면 그것은 ‘유통’이 아닙니다. 시장의 수요를 만들어내는 치밀한 전략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지요.
올 추석 선물세트가 40만 원대 이상의 고가 제품과 5만 원 이하 저가 선물세트로 양분된 것도 결국은 유통의 힘인 듯 하네요.
정효진 산업부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