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28>이집트 나일 크루즈

  • 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0분


神의 땅 스치며 시간을 역류하는 ‘타임머신 보트’

《아프리카 대륙 동부 에티오피아의 아비시니아 고원. 수단을 지나 이집트의 팍팍한 사막 땅을 적시며 지중해로 흘러드는 2084km의 나일 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장대한 물길은 분명 신이 내린 선물이다. 사막에서도 배불리 먹고도 남을 곡식과 과일을 키워내서다.

그 과정은 이렇다. 해마다 5월이면 아비시니아 고원에 몬순성 폭우가 4개월간 쏟아진다. 그 비로 강물은 급격히 불고 그 물은 7월이면 어김없이 나일계곡의 초입, 아스완에 도달한다. 나일강 하구의 델타(삼각주)가 범람하는 것은 그 직후. 10월까지 4개월간이다. 그러나 12월부터는 물도 바다로 빠져나간다. 강물에 실려 온 실트(모래와 진흙 중간 크기 입자의 흙)를 바닥에 뿌려둔 채. 덕분에 델타는 기름진 옥토로 변한다.

그런 이집트에서도 나일 강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해마다 모래로 뒤덮이는 저수지와 운하를 정비하고 무역로의 안전을 확보하자면 파라오의 보호가 필요했다. 때문에 파라오는 나일강과 더불어 이집트 번영의 근간이었다. 살아서는 신(神)처럼, 죽어서는 신이 되는 이집트의 주인 파라오. 그 파라오는 나일강과 한몸이다. 나일 강변 고대도시의 화려한 유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일 크루즈는 그런 나일강과 파라오를 배로 찾는 유적투어다. ‘떠다니는 호텔’로 지어진 크루즈보트에서 숙식하면서. 코스는 이렇다. 상(上)이집트의 수도 테베가 있던 룩소르가 출발지다. 목적지는 강 상류의 아스완. 하이댐이 있는 그곳이다. 짧게는 나흘, 길면 일주일(왕복) 걸린다.

도중에는 여러 유적지에 들른다. 먼저 출발지인 룩소르를 보자. ‘사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에 있는 ‘왕가의 계곡’, 세계 최대 규모의 신전인 카르나크와 룩소르 신전을 찾는다. 에드푸에서는 매의 모습을 한 신 호루스의 신전을, 아스완에서는 하이댐과 수몰 위기에서 구해 섬에 옮긴 필레신전을 답사한다. 그 나일 크루즈로 여행을 떠난다.》

오전 6시 20분. 카이로공항을 이륙한 이집트 항공기가 룩소르공항에 안착했다. 1시간 5분 만이다. 사막의 아침은 그 신선함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더하다. 한낮 사막의 뜨거움에 데어본 이라면 쉬 알 수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그런 청량함이 이 도시에서는 더 두드러졌다. 이른 새벽 공항에 나와 손님을 맞는 현지인의 생기발랄한 표정 덕분이다. 살펴보니 승객 대다수가 나일 크루즈 관광객이다.

배 출항 시간은 오후 8시. 그때까지는 온종일 룩소르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먼저 할 일은 배 안 객실로 짐을 옮기는 일. 예약한 ‘라(Ra·태양의 신) 1호’는 객실 72개짜리 4층형 배였다. 이름은 크루즈보트지만 외양은 배보다는 빌딩에 가까웠다. 이렇게 설계한 이는 영국인. 그들은 이 배를 ‘플로팅 호텔’(떠다니는 호텔)이라고 부른다.

나일 크루즈가 이집트 유적여행의 간판이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룩소르와 에드푸, 아스완 등 나일 강변에 발달한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유적지에는 변변한 호텔도 없다. 그러니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배가 필요했다. 나일 강을 오르내리며 여행하기에 크루즈만큼 편리한 수단도 없었다.

그런데 나일 크루즈 배는 크기와 모양이 대개 비슷하다. 접안시설이 부족한 유적지 부두에 수십 척이 동시에 정박하기 위해서다. 호루스 신전을 보기 위해 정박한 에드푸에서다. 하선하기 위해 로비로 나갔다가 희한한 장면을 보게 됐다. 난데없이 긴 복도가 멀리 부두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여덟 겹으로 나란히 잇댄 배가 로비층의 양측 문을 열어 연결한 부교(浮橋)였다.

배 안을 살펴보자. 왜 플로팅 호텔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된다. 1층은 식당, 2, 3층은 로비와 객실, 4층은 공연장 겸용 라운지 바와 선물가게, 옥상격인 5층 갑판은 풀과 선탠베드, 그늘쉼터로 꾸며졌다. 지상에 있다면 그냥 4층짜리 호텔이다. 일정은 보통 3∼6박 정도.

○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신전도시 테베, 룩소르

무모한 짓이었다. 룩소르 유적을 하루 만에 둘러본다는 것은. 룩소르는 ‘테베’라고 불렸던 상이집트의 신왕국 수도. 신왕국(18∼20왕조·기원전 1333∼기원전 1076)은 고왕국, 중왕국에 이어진 고대왕국. 257년간으로 결코 길지 않았지만 그 족적만큼은 대단하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기원전 1213)도 당시(19왕조)의 파라오다.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당시 유적이다. 이 중 카르나크는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더불어 이집트 3대 유적지라고 불리는 곳. 며칠을 두고 살펴볼 만큼 거대하다.

버스가 강을 건넜다. 나일의 서편, 네크로폴리스를 향해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강의 동서가 분명했다. 해뜨는 동쪽(이스트뱅크)은 신들의 땅, 서쪽(웨스트뱅크)은 죽은 자의 땅이다. 그래서 신전은 동쪽에, 무덤은 서쪽에 둔다. 네크로폴리스는 ‘사자(死者)의 땅’이다. 바위계곡 지하에 은밀히 조성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완벽한 상태로 발굴(1922년)돼 유명해진 ‘왕가의 계곡’이 거기에 있다.

파라오의 무덤은 세 종류다. 마스타바(정육면체)와 피라미드, 지하무덤인데 순서대로 발전했다. 그 변천 이유는 간단하다. 도굴이다. ‘왕가의 계곡’은 지하무덤이 집중된 바위산에 있다. 파라오는 생전 극비리에 지하무덤 공사를 벌였고 사후 거기에 숨듯 묻혔다. 그런 무덤이 18세기 이후 지금까지 64기나 발굴(11기만 공개 중)됐다. 쿠푸 왕이 기자에 피라미드를 조성한 지 1000년쯤 후 일이다.

그곳은 팍팍한 바위로 이뤄진 황량한 사막의 U자형 골짜기. 계곡에 들어서자 기관총을 든 이집트 병사의 초소가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 지하로 연결된 동굴 입구도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람세스 2세 것부터 찾았다. 닫혀 있었다. 1985년부터 닫아둔 상태다. 부근의 람세스 3세(20왕조) 무덤으로 들어갔다. 계단으로 내려가자 지하로 긴 회랑이 100m쯤 이어졌다. 미라와 부장품이 놓였던 전실은 그 끝에 있다. 그러나 전실은 텅 빈 상태. 볼 수 있는 것은 음각한 상형문자와 그림, 화려한 채색벽화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부 장식은 기막혔다. 전실과 마찬가지로 회랑의 벽도 온통 채색 그림이었다. 3000년 이상 흘렀건만 색상과 선이 명료했다. 특히 이 무덤은 하프를 켜는 장님의 모습(2개)을 새긴 부조(2개)로 이름났다. 회랑의 양편에 부속된 작은 방을 둔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죽음의 땅, 테베의 네크로폴리스를 떠나기 전 꼭 들러볼 곳이 있다. 하트셰프수트 장례사원이다. 하트셰프수트는 이집트 5000년 역사에서 흔치 않은 여성 파라오(기원전 1473∼기원전 1458)다. 그녀는 사막의 거대한 바위산 중심에 멋진 석조건물을 지었는데 그것이 이 장례사원. 자신의 무덤이자 생전의 업적을 기릴 기념비였다.

베이지빛깔의 석조사원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규모도 크고 아름답다. 하나하나 조각된 200여 개의 돌기둥, 다양한 부조로 도배된 벽면, 그리고 허다한 상형문자의 벽…. 이 모두가 왕의 치적을 나타낸다. 이집트 여행 중에 가장 부러운 부분이 바로 이것. 3500년 전 역사가 생생하게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것이다.

○ 동서 546m 남북 600m 규모의 카르나크 신전

사막의 땡볕 아래서 유적 탐사와 역사 강의. ‘머리에 쥐가 날 만큼’ 고된 일이다. 그래서 일단 배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뒤 휴식한다. 그리고 열기가 한풀 꺾인 오후 4시쯤 다시 유적 투어에 나섰다. 이번에 찾을 곳은 이스트뱅크인 강 동편.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다.

신전의 위치는 모두 강안이다. 나일 강이 생명줄인 만큼 강을 벗어날 수는 없었으리라. 먼저 카르나크 신전부터 찾았다. 위치는 룩소르 시내에서 2.5km. 성벽처럼 굳건해 보이는 높이 10층 규모의 탑문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동서 540m, 남북 600m의 규모. 건축은 11왕조부터 무려 1000년 이상 계속됐는데 지구상의 신전건축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신전의 주인은 아문(Amun)신. 신왕국시대가 숭앙한 최고신으로 테베의 조물주다.

탑문을 통해 들어선 신전. 주 회랑을 향해 양편에 숫양 머리의 스핑크스 10여 기가 도열했다. 그리고 그 끝에 거대한 석상이 보였다. 람세스 2세다. 소설 람세스를 읽은 이라면 이 부분에서 소설 속의 영웅적인 파라오의 모습을 이 석상에서 찾으려 애쓸 것이다.

람세스 2세의 석상 뒤로 보이는 특별한 풍경. 수많은 돌기둥의 숲이다. 이 열주(列柱)가 카르나크 신전의 건축 주제다. 높이는 15.13m, 그 수는 134개. 모양도 특이하다. 나일강 하구에서 자라는 갈대 파피루스 모양이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인이 종이 대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나일 강에 서식하는 갈대 파피루스 만든다.

이집트 건축의 재료는 돌. 유적의 돌기둥과 벽에는 예외 없이 그림과 글씨가 있다. 물론 그 모두가 당시 역사를 담아낸다. 로제타석 발견으로 해독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카르나크 신전에서라면 그 문자를 해석하는 이집트인 현지 가이드로부터 현장 역사해설을 듣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 자신도 고고학자가 되어 고대유적을 발굴하는 듯한 낭만적인 착각에 빠진다.

룩소르=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이집트 ▽항공로=대한항공이 인천∼카이로 직항노선에 주3회 운항 중(월수금 인천 출발). 약 12시간 소요. ▽비자=도착공항에서 발급(미화 15달러). ▽통화=이집트파운드. 1파운드에 201.66원(8월 25일 현재). 미국달러도 통용된다. 쓰고 남은 이집트파운드는 출국 시 재환전이 안 되니 주의. 소액권(1파운드 이하)을 충분히 준비하자. ‘잔돈 없다’는 핑계로 거스름돈을 떼이는 봉변을 면하려면. ▽여행 적기=사막의 한여름 땡볕은 살인적이다. 10∼12월이 좋다(25도 내외). 최적기는 겨울(12∼2월)로 최고 20도 내외. 라마단(올해는 2일∼10월 1일)도 피한다. 날씨 및 기온은 한국홍보사무소 홈페이지(www.myegypt.or.kr/htm/page/m1/page4.jsp) 참조. ▽주의할 점=유적투어에서 필요한 것은 인내. 사막의 땡볕 아래 고대사를 더듬는 일은 고역일 수 있다. 물론 그만한 가치는 있지만. 더위를 식힐 것은 그늘과 생수뿐. 생수 사는 데 인색하지 말자. 챙 넓은 모자나 양산도 필수품. 생수 값도 행상마다 다르니 비교 흥정 후 산다.

◇룩소르=카이로 남쪽으로 670km, 항공기로 1시간 소요. 상(上)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가 있던 곳.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100개의 문이 있는 도시’로 묘사할 만큼 고대 유적이 많아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관광객의 90%가 찾는다. 충적평야의 주거지 이스트뱅크(강 동편의 땅)는 팜 트리와 채소밭 밀밭이 발달한 농촌. 호텔 70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도 있다. www.luxor.gov.eg

◇나일 크루즈=룩소르∼아스완(도로로 225km)의 나일 강을 ‘플로팅 호텔’이라고 불리는 크루즈보트로 여행하며 강안의 고대유적을 답사하는 여행상품. 300척이 운항 중인데 별의 개수(5개가 최고)로 등급 표시. 일정은 4∼7일, 배에서 숙식하고 휴식한다. 국내 여행사에서도 취급한다.

◇여행정보 ▽이집트 관광청=www.egypt.travel ▽한국홍보사무소=www.myegypt.or.kr 02-2263-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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