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념사총서 1권 ‘만국공법’ 펴낸 김 용 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
이 책을 통해 국가 주권 법 조약 등 서양의 낯선 개념이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됐다. 중국 중심의 사대 질서가 지배하던 당시 서구 개념의 등장은 혼란을 일으켰다.
김용구(71)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그 혼란의 사례로 ‘속방(屬邦)’과 ‘속국(屬國)’의 개념 차이로 빚어진 충돌을 들었다.
“동양의 사대 질서 속에서 중국 이외의 나라는 속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속국이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속방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만 제외하고 내치(內治)와 대외 관계는 자주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만국공법을 통해 서양의 속국 개념을 처음 알게 됐고, 조공을 바치던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죠. 서양 근대의 국가들처럼 속국의 내치와 외교까지 통제하려 했던 겁니다.”
마틴의 ‘만국공법’은 1870년대 조선에 전파돼 조선의 전통 개념과도 충돌을 빚었다. 조선에서 이전부터 사용하던 ‘외교(外交)’라는 개념의 충돌이 대표적 사례다. 김 원장은 “조선에서 외교는 ‘신하국이 제후국의 승인 없이 다른 제후국과 교섭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서양에서 들어온 외교 개념은 ‘동등한 국가 간의 교섭’이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적절한 검토와 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대로 정착한 서구의 개념이 많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김 원장은 지적했다.
한림과학원은 2005년 개념사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19세기 중엽 이후 150년 동안 한국의 학계에 뿌리를 내린 기본 개념 86개 항목을 선정해 그 개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했는지, 사용된 용어가 적절한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박명규 서울대 교수가 ‘시민’ 개념사를 정리하는 것을 비롯해 박상섭(서울대) 최원식(인하대) 박근갑 최창희 송승철(이상 한림대) 교수 등 17명이 참여하고 있다. 개념에 대한 분석은 각각 책으로 만들어 ‘한국개념사총서’라는 이름 아래 발간한다. 2015년 완간이 목표.
그 첫 번째 책으로 최근 ‘만국공법’(소화)을 발간했다. 마틴의 책을 단순 번역한 게 아니라 만국공법이 뜻하는 ‘국제법’이나 ‘국제정치’의 개념사를 정리한 책이다. 김 원장은 “앞으로 국가 헌법 시민 민족주의 문학 야만 진보 자유 등에 대한 개념사 분석이 차례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독도 문제도 개념사 연구에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국경’이란 개념은 ‘선(線)’이 아니라 ‘공간(空間)’이라는 느슨한 형태로 인식됐습니다. 독도는 조선의 공간 속에 있었죠. 그런데 선을 내세우는 서양식 국경 개념이 들어오면서 선이 어떻게 그어졌는가를 놓고 시비가 붙었습니다. 개념사 연구자들은 한국에서 사용된 국경의 개념을 알리고, 독도는 그 국경 속에 있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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