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며, 책 읽기의 한 과거에 대한 책이다. 그 과거란 인문·사회학자들이 즐겨 근대라 칭하는 그 연대의 들머리에 놓인 시간으로서, 현재와 직접 이어져 있는 한편 미래를 예견하게도 하는 그런, 아주 연(緣) 두터운 과거이다.’ 》
평양 기생, 투르게네프에 빠지다
이 책은 근대에 관한 색다른 주제를 탐색한다.
1920, 30년대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책 읽기’ 문화를 통해 분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중독자, 텍스트(주로 문학 텍스트), 작가라는 근대 독서의 세 주체가 어떻게 상호 연동했는지 살피고 근대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본다.
한국 근대소설이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조건 아래서 생산 유통됐다는 점은 이 분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먼저 근대 독자 형성의 문화적 제반 조건을 따진다. 그에 따르면 근대 출판시장은 1919년 3·1운동 이후 근대적 학교교육이 보급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신문 저널리즘의 영향 등으로 대중문화로서의 영향력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근대 이전부터 구연된 고전소설의 향유자인 ‘전통적 독자층’, 대중·통속소설 향유자인 ‘근대적 대중독자’, 순수 문예작품과 일본 작품 향유자인 ‘엘리트적 독자층’으로 분화한다.
독자층의 분화는 일제 치하의 모순적 언어 상황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으론 높은 문맹률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문명생활’을 위해 일본어 습득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근대소설은 이 중 후자의 두 계층에 의해 유력한 도시 대중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외에도 영화 연극 등 새로운 장르의 출현과 책 읽기의 상호작용, 당시 폭발적인 양상이었던 편지 쓰기(그중에서도 내밀하고 낭만적인 연애편지)가 근대문학 발전에 미친 영향 등은 눈길을 끈다.
근대의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수록돼 있는 것 역시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특히 1920, 30년대에 이뤄진 책 읽기 양상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통계와 신문기사, 일간지에 실린 책 광고지면 등을 풍부하게 제시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별 도서 발간 추세, 기능적 독서와 오락으로서의 독서 양상에서부터 1920년대에 출현한 사회주의 문학, 1930년대 제기된 조선 문학 정체성 논란까지 짚어낸다. 문학 독자층의 형성과 분화 과정에서는 계층별 독서가 지닌 특징뿐 아니라 서울 월급쟁이들의 삶, 투르게네프를 읽는 평양 기생 등 독서를 통해 본 사회상까지 생생하다.
고급 취향의 문학 규칙을 제도화하는 교육의 힘과 독자를 계몽대상화했던 근대문학의 독자상까지 파악하고 보면 책 읽기란 것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거대한 문화사적 변동 속에서 이뤄진 문학사의 일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의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힌다. ‘책 읽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성찰에 약간의 소재 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대로 근대의 지적 풍경 변화에 대한 새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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