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村賞 영광의 얼굴들… 수상소감과 공적

  • 입력 2008년 9월 10일 03시 02분


제22회 인촌상 수상자

좋은 세상 만들기 외길… 그 큰 발자취를 기립니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9일 제22회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17주년,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올해는 6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전문가 4명씩이 참여해 두 달간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교수 테뉴어’ 강화… “세계적 명문대 육성”▼

서남표 씨 (KAIST 총장)

“KAIST를 세계적인 이공계 명문 대학으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높여 달라는 주문으로 알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서남표(72) KAIST 총장은 “전통과 권위가 있는 인촌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KAIST 개혁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과 인내와 열정으로 개혁에 동참해 주신 KAIST 가족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교수 테뉴어(tenure·정년보장) 심사제도 강화는 그의 핵심 개혁. 지난해 8월 테뉴어 심사에서 심사 신청 교수 35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켜 ‘교수 철밥통’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서 총장은 ‘EEWS(에너지, 환경, 수자원, 자원의 지속가능성)’를 핵심 연구주제로 잡아 과학기술계의 연구방향을 제시했다. 이들 주제에 대한 융합 연구를 위해 8개의 KAIST 연구원(KI)을 세웠다.

실패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하면 보상도 큰 ‘고위험, 고수익 연구(High Risk, High Return)’를 장려하고 있는 그는 “독창적이고 모험적인 연구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강연료와 수상금을 전액 학교에 내는 솔선수범을 실천하며 취임 이후 거액 기부만 700억 원가량을 유치했다. 서 총장은 “정부와 기업, 자선가들이 가능성 있는 대학을 집중 지원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최근 KAIST의 개혁에 공감해 기부한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공적

2006년 7월 KAIST 총장에 취임한 이후 교수 테뉴어 심사를 강화하고 인성 위주로 입시제도를 개선했다. 100% 영어 강의를 도입했고 21세기 수요에 맞는 학과 개편을 단행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장과 미국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 시절에도 개혁전도사로 불렸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 한국공학교육인증원장, 신성장동력기획단장.

▼古신문 영인화… “실증적 언론사 연구 중요”▼

정진석 씨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젊은 시절 총독부가 민족지들을 검열해 삭제했던 ‘압수기사’ 목록집을 발견했을 때 무척 떨렸습니다.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압수 삭제기사의 원본을 읽고 감동했습니다.”

정진석(69)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국내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1974년 ‘일제하 한국언론투쟁사’를 펴낸 이후로 지금까지 후학도 없이 외롭게 언론사 연구에 매진해왔는데 인촌상이라는 커다란 평가를 받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일제시대 민족지 압수기사 모음’ ‘언론조선총독부’ 등의 저서를 통해 조선 말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현대에 이르는 한국 언론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해왔다.

특히 정 교수는 한성순보, 한성주보,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해방공간 4대 신문 등 역사적 사료가치가 높은 고(古)신문을 고증하고 해제를 붙인 영인본을 출판해 한국언론사 연구의 ‘고속도로’를 뚫은 학자로 평가받는다. 이 영인본은 독립운동사 문화사 문학사의 연구에도 필수적인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정 교수는 “그동안 항일-친일, 좌-우 등 편향된 시각을 갖고 언론사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무엇보다 ‘실증적 사실’에 입각한 언론사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1차 사료인 신문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정부와 언론학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공적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영국 런던대 정경대에서 각각 언론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대학에서 강의와 함께 한국언론사 연구에 매진해왔다. ‘일제하 한국언론투쟁사’ ‘언론과 한국 현대사’ 등 16권의 저서와 공저 5권, 편저 11권을 저술했다. 1880년대 구한말부터의 신문 영인작업을 주도해 언론사와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명공학산업 산증인… “신약개발에 매진”▼

허영섭 씨 (녹십자 대표이사 회장)

“저 개인이 받은 상이라기보다 국내 제약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약 개발을 통해 제약 산업 발전을 위해 더욱 분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허영섭(67) 녹십자 회장은 9일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모든 기업 대표들의 용기를 북돋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허 회장은 ‘질병 없는 사회, 이는 전 인류의 이상이자 곧 녹십자의 이상’이라는 모토 아래 198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하고 1988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개발한 한국 생명공학산업의 산증인.

녹십자가 400억 원을 들여 전남 화순군에 짓고 있는 독감백신 공장이 내년에 가동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독감 백신 자급 기반을 갖추게 된다.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도 맡고 있는 허 회장은 2010년을 목표로 조류인플루엔자(AI) 백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2003년 이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을 맡아 1만7000여 개에 이르는 기업 연구소의 육성과 지원을 통해 국내 산업계의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독일 명문 아헨공대에서 유학한 허 회장은 독일과의 교류협력 증진을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2000년부터 한독협회 회장을 맡아 양국 협력 활성화를 위해 애쓴 공로로 2005년 독일 연방정부에서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또 한독 상공회의소 이사회 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공적

1964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아헨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이사장과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 초대 한국생물산업협회 이사장, 한국제약협회 회장 등을 지내면서 한국의 생명공학 발전을 이끌었다. 1991년에는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한국혈우재단을 설립했다. 현재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형평’ 개념 첫 도입… “세계화 문제에 주목”▼

차하순 씨 (서강대 명예교수)

“권위 있는 인촌상을 받게 돼 큰 영광입니다. 개인의 영광을 넘어 서양사라는 학문 분야가 대접을 받은 것 같아 더욱 기쁩니다.” 차하순(79) 서강대 명예교수는 “인촌상은 동료와 후학을 대표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광복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서양사학계에서 서양사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고 학문적 기초를 닦은 ‘1세대 학자’로 꼽힌다. 그는 이기백 이광린 길현모 전해종 교수 등과 더불어 1960년대 이후 역사학계에서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서양 사상사를 전공한 차 교수는 자유 평등 정의 등 근대를 거쳐 현대사의 기초가 된 개념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특히 ‘형평’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평등에는 차이가 있는데 그런 차이가 공평한지 아닌지 따지는 잣대로 ‘형평’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다는 이론이다.

1983년에 펴낸 저서 ‘형평의 연구’는 형평 개념 연구를 모은 책이다. 변변한 서양사 교재가 없던 1970년대 후반에 펴낸 역저 ‘서양사 총론’도 서양사학도의 필독서가 됐다.

차 교수는 “최근에는 현대사와 세계화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고 동서양의 문명 비교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역사학 한국위원회 위원장인 그는 최근 일본위원회와 함께 ‘역사가의 탄생’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펴내기도 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공적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69년 미국 브랜다이스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국내 대학 강단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1963∼1994년 서강대 교수를 지냈다. 역사학회장, 서양사학회장, 비교문화연구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부터 국제역사학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일 역사학계 교류 및 한국 역사학의 국제화에 힘쓰고 있다.

▼고체물리학 권위… “전인미답의 길 가겠다”▼

국양 씨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저보다 훌륭한 과학자도 많은데 큰 상을 받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더 열심히 연구하라는 채찍으로 알겠습니다.”

국양(55)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항상 옳은 일,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시던 인촌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게 돼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 메릴랜드 주 표준과학연구원에 머물고 있는 국 교수는 국제전화와 e메일로 수상 소감을 보내왔다.

“깜깜한 밤길을 걷다 갑자기 날아온 보따리에 머리를 맞은 느낌입니다. 그동안 걸어온 노력에 대한 칭찬보다 앞으로 걷지 말고 뛰라는 당부를 담은 상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인촌 선생의 10분의 1이라도 닮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국 교수는 1984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주사형터널링현미경’을 만들며 세계적인 실험물리학자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원자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이 현미경을 이용해 국 교수는 25년 동안 물질의 미세구조를 다루는 나노과학을 연구해왔다. 그는 “10년 뒤에는 나노 재료가 현재의 전자소자나 광소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 교수는 “정년퇴직 전까지 과학의 범위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찾아 하고 싶다”며 “앞으로 정말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7월 서울대 연구처장 임기를 마친 뒤 안식년을 맞아 국내외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고 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공적

고체물리학 실험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141편의 논문을 유명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논문 총 인용 횟수가 국내 최고 수준인 2800회를 넘어섰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벨연구소를 거쳐 1991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섰다. 지난 2년간 서울대 연구처장으로 일하며 모교의 연구환경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노력했다.

▼‘내화물’ 외길… “인재 양성에 여생 바치겠다”▼

이훈동 씨 (조선내화 명예회장)

“교육과 언론문화 창달을 위해 힘써 온 인촌 선생을 평소 흠모해왔어요.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더없이 기쁩니다.”

이훈동(90) 조선내화 명예회장은 “인촌 선생처럼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는데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겸손해했다.

이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에 내화물(높은 온도에도 견디는 물질) 원료인 납석 광산의 직원으로 취업한 이래 평생을 한우물만 판 국내 내화물 업계의 산증인.

그는 “문어발식으로 여러 분야에 진출하다 보면 어느 것 하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눈팔지 않고 외길 인생을 걷다 보니 조선내화를 비롯한 계열사 모두 재무상태가 건전하다”고 말했다. ‘깨어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신념으로 그동안 남보다 앞서 현대식 설비를 들여오고 사원복지 제도를 시행해 업계의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우지 못한 것을 한(恨)으로 여겼던 이 명예회장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과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1977년 성옥문화재단을 설립했다. 77억 원의 기금으로 지금까지 학생 4000여 명에게 32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명예회장은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써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라며 “인촌 선생처럼 남은 삶도 인재를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 건전한 지방언론을 육성하기 위해 전남일보도 창간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공적

연간 매출액 3000억 원의 조선내화를 비롯해 15개 기업을 거느린 전남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1964년부터 21년 동안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낙후된 지역개발을 선도했고 대한상의 부회장, 대한광업회장 등을 맡아 상공업계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제22회인촌상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김병수 포천중문의대 총장 △위원: 김기영 연세대 명예교수, 정동윤 고려대 명예교수, 김병채 한양대 부총장

▽언론출판 △위원장: 유재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위원: 김민환 고려대 교수,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 이광훈 고려대 초빙교수

▽산업기술 △위원장: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위원: 여종기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최재익 산업기술진흥협회 상근부회장, 김수원 고려대 공과대학장

▽인문사회문학 △위원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위원: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 진덕규 이화여대 석좌교수, 정두희 서강대 교수

▽자연과학 △위원장: 한민구 서울대 교수 △위원: 장진 경희대 교수, 전승준 고려대 교수,우제창 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공공봉사 △위원장: 김상균 서울대 교수 △위원: 배임호 숭실대 교수, 양옥경 이화여대 교수, 홍선미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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