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한테 판다 인형을 보여줬어. 너무 예쁘다면서 다음에 또 보여 달라고 했지. 그래서 난 매일 선생님한테 인형을 보여줬어. 매일매일. 한 달 뒤 선생님이 소리 질렀어. ‘이제 그만 갖고 오란 말이야!’”
이 여자, 답답해도 너무 답답하다. ‘다음에 또 보자’가 ‘안녕’과 동의어인 줄 모르고 그 사람이 왜 또 보자고 안 하나 기다린다. 커피 한 모금만 마시겠다던 남편이 한 잔을 다 마신 걸 알고는 “왜 말대로 안 하지”라며 시무룩해한다. “당신 정말 이상해”라는 농담에 정색을 하고는 “내가 이상해? 어디가 이상해?”라고 따지고 든다. 당연히 ‘왕따’다.
연극 ‘억울한 여자’(연출 박혜선)는 이렇게 눈치 없는 여자 유코의 이야기다. 일본 작가 쓰시다 히데오의 작품을 우리 무대로 옮겼다. 내용은 유코가 네 번째 남편 다카다와 결혼생활을 시작해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극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소소한 에피소드와 평범한 대화로 얘기를 이어가지만, 극의 중반부가 넘어서면 관객들도 유코에게 짜증이 날 정도로 묘사가 치밀하다.
풍문으로만 떠도는 마을의 떨매미를 진짜로 본 적이 있다며 찾아 나서고, 유난히 죽이 잘 맞는 유부남·유부녀를 보고는 “불륜 아니냐”고 대놓고 따진다. ‘튀는’ 이 여자를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할 리 없다. 자연히 슬금슬금 피한다. “서로에게 마지막 배우자가 됐으면 좋겠어”라고 바랐던 남편까지도. 말한 대로 믿고, 본 대로 말한 것뿐인데, 유코의 인생은 왜 이렇게 억울할까. 떨매미가 실재하고 불륜도 맞았지만 유코는 잘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왕따’일 뿐이다. 답답한 유코를 불편해하던 관객들도 마지막에 이르면 바로 자신들도 한 사람을 향한 집단의 폭력에 동참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휴식시간 없는 1시간 50분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고르다. 특히 지난해 동아연극상 수상자인 이지하 씨가 이 ‘억울한 여자’ 역을 안정감 있게 소화한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14일까지. 1만5000∼2만 원. 02-762-001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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