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왔습니다”에 지관스님 묵묵부답… 그냥 돌아와
정부의 종교편향에 항의해 온 불교계가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등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추석 이후에 열기로 했다.
불교계는 10일 오후 조계종 9교구 본사인 대구 팔공산 동화사 성보박물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천태종 및 태고종 등 주요 종단 총무원장과 스님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경북 불교지도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일단 추석(14일)까지 어 청장 퇴진 등 3개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 태도를 지켜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이들 요구사항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추석 이후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의 구체적인 개최 날짜와 장소 등은 범불교 대책위원회가 추후 논의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는 정부의 종교편향에 항의하며 대통령의 사과, 어 청장의 사퇴, 공직자 종교편향 근절 입법조치, 시국 관련 국민대화합 조치 등 4개 조건을 내걸었으나 9일 이명박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이뤄지자 나머지 3개 요구사항을 실행할 것을 정부 측에 요구하고 있다.
이날 불교계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어 청장은 불교지도자 간담회가 열린 대구 팔공산 동화사를 방문했다. 어 청장은 조계종 총무원장 승용차 검문 등을 사과하기 위해 동화사를 찾았지만 끝내 문전박대를 당했다.
어 청장은 이날 오후 4시 50분경 동화사에 도착해 대웅전 앞마당에서 마주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큰스님 저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당시 회의장으로 이동하던 지관 스님은 어 청장이 내민 손만 잠시 잡았을 뿐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 오후 5시부터 회의에 참석했다. 어 청장은 동화사 경내에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신도들의 반발로 면담을 하지 못하고 오후 8시경 동화사를 떠났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어 청장이 찾아오겠다고 연락해 왔지만 사퇴를 요구하는 마당에 방문을 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종단 관계자로부터 동화사에 조계종 총무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종단 스님들도 오시니 동화사에서 뵙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어 청장이 대구로 급히 내려갔다”고 전했다.
불교계는 어 청장의 사진이 기독교 행사 포스터에 실린 일과 조계종 총무원장에 대한 일선 경찰관의 과잉 검문 등을 문제 삼아 어 청장의 사퇴를 요구해 왔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