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고향,코끝 찡한 마음의 쉼터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44분


기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달인을 만나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4년 동안 추석 때마다 객지를 떠돈 유랑의 달인, 정착 김병만(33) 선생을 소개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김병만(이하 김)=반갑습니다.

기자=14년 동안 연휴 때 고향으로 가신 적이 없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그렇습니다.

기자=고향이 어디신데 추석 때 한 번도 못 가셨나요.

김=전북 완주입니다. 전형적인 시골이죠. 추석 하면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산적꼬치가 떠오릅니다. 산머루 다래 밤 감 등 열매 따먹는 재미가 쏠쏠했죠. 쩝….

기자=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서운하시겠습니다.

김=개그맨이 되고 나서는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설과 추석은 개그맨들에게 ‘대목’ 아니겠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솔직히 말하면 딱히 볼 낯이 없었어요. 열아홉 살에 개그맨 되겠답시고 엄마한테 30만 원 빌려서 상경했는데 10년 넘게 연극판을 전전하며 벌이도 시원찮았으니….

○14년 동안 추석 때 혼자 지낸 우울 김병만 선생

기자=그럼 혼자 서울에 남아 무엇을 하셨나요.

김=지난해까지는 혼자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특히 혼자 술을 먹었죠. 거울 보며 저 자신에게 욕을 했어요. ‘너 뭐 하냐? 멍청한 놈아’ ‘너는 왜 그렇게 작냐’ 거울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표정연기가 됐습니다.

기자=눈물 젖은 추석이군요.

김=연휴 때 혼자서 소주병 안 불었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대학로에서 연극할 땐 공연장에서 지냈어요.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죠. 추석연휴 끝나갈 무렵 보조석 위에 이불 깔고 자려는데 밤이 무서웠어요. 소주 한잔 마시고 잠을 청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 거예요. 그래서 개 키우는 친구에게 개만 놓고 가라고 했어요. 시추, 그놈 참. 사람처럼 누워서 자는데….

기자=얼마 전 대한민국 방송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우셨는데요.

김=아버지 생각을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사람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이 자꾸 우울해지면 안 되잖아요. 올해 예순네 살이신데 대장암 수술 받고 치매가 급속도로 악화됐다가 요양원에 가면서 많이 좋아지셨어요. 엄마만 알아보셨는데 요즘은 누나도 찾아요. 그런데 제 이름과 존재는 잊으신 것 같아요.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이라고 개그맨이 하나 있는데’라고 했는데 요즘엔 제가 ‘아버지 저예요’ 하면 ‘누구세요’라고 하세요.

○“월세에서 전셋집으로 이사, 14년 만에 웃으며 모여요”

기자=KBS2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로 개그의 달인이 되셨는데 올해는 고향에 가나요.

김=몇 달째 제 왼쪽 다리 뒤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것도 치료받아야 하고, 추석 대목인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죠. 대신 어머니와 4남매가 서울에 있는 제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요. 추석 전에 월세인 지금 집에서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요. 이렇게 웃으면서 모이는 게 몇 년 만인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꼬리 들고 요양원에도 들러야죠. ‘아부지, 나 처음으로 상 먹었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기자=그러고 보니, 올해로 서른세 살이시네요. 참한 아내를 만나셔야 할 텐데 말이죠.

김=제가 애 같은 구석이 있어요. 키 작은 나(159cm)를 안아주는 평강공주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저를 데리고 다니며 이끌 수 있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여자를 원하는데 남들은 다들 제가 눈이 높다는군요.

기자=마지막으로 올 추석 때 보름달에 빌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네, 서울 인근에 전원주택을 만들어서 모든 식구가 모여서 살고 싶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성공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오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들 여유를 찾으려 땅으로 돌아갑니다. 굳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서울에 집 한 채, 시골에 집 한 채 있으면 그게 최고 아닙니까. 그 꿈 하나만 바라보며 이렇게 달리는 거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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