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 이 작품]정현의 ‘무제’

  • 입력 2008년 9월 16일 03시 00분


늦가을 벌판에 쓸쓸하게 드러누운 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듯 보인다. 예리한 필선을 들여다보니 평범한 드로잉이 아니다. 철판 위에 난 흠집을 따라 생긴 검붉은 녹이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철판을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거나 자동차 뒤에 매달아 자갈밭을 끌고 다니며, 거기서 얻어지는 자연스럽고 우연한 흠집들이 산화되어 녹으로 바뀐 이미지를 채집했다. 오래된 침목과 녹슨 철근 등 버려진 소재를 주목해 온 작가. 그의 소박한 철판 드로잉은 볼품없는 흉터를 무늬로 바꿔놓은 세월의 힘을 보여준다. ‘상처 많은 인간의 삶도 그러하지 않냐’고 묻는 것 같다.

정현 개인전(25일까지 학고재 갤러리 02-739-4937)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