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이 흘러나오는 영화 ‘보디가드’는 할리우드 스타 레이철(휘트니 휴스턴)과 그를 묵묵히 지켜주는 냉철한 경호원 프랭크 파머(케빈 코스트너)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찍’ 소리만 나도 총을 꺼내 겨눌 것 같은 날카로움, 다부진 상체 위로 맨 권총 멜빵, 그리고 우수에 찬 눈빛까지….
설령 ‘허상’이라 할지라도 경호원, 특히 스타의 곁에 서 있는 그들에겐 남다른 고독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16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자랐다는 ‘미스터 포마드’는 다른 얘기를 늘어놓았다.
“케빈 코스트너요? 정 반대죠. 전 특이하게 생겼잖아요. 머리도 크고. 그 사람처럼 폼 잡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영화와 현실은 다르니까요….”
9일 오후 그와 마주한 공간에는 날카로움과 고독함 대신 진한 포마드 냄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훈남’의 굵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금속성 쇳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경호원 대신 “형님∼”이라는 소리가 먼저 나올 것 같은 180cm, 90kg의 육중한 체격. 혹자는 이 미스터 포마드에게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꺼비 같은 손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경호업체 ‘강한친구들’의 연예인 전문 경호원 김덕영(36) 씨. 1996년 팝스타 마이클 잭슨 내한 때 처음으로 연예인 경호를 시작한 이래 12년간 스타들만 전문적으로 경호하고 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연예인은 줄잡아 100명이 넘을 정도. 검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직업병에 걸린 듯 약속 시간보다 30분 먼저 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스타 경호는 나와의 싸움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력’이에요. 2주 전 캐나다 여성 로커 에이브릴 라빈이 내한 공연을 했는데 외국 관객들이 몸을 심하게 흔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넘어졌는데 압사 사고가 날 것 같아서 공연을 끊고 장내를 정리했죠. 공연의 맥은 끊겼지만 그 순간만큼은 연예인 경호보다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경호하기 힘든 스타는 누군가요?
“‘동방신기’죠. 자기 몸을 공중에 던지는 열혈 팬이 많아요. 3년 전쯤 부산 해운대에서 공연을 끝내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동방신기 매니저가 열쇠를 잃어버려 멤버들이 차에 못 오른 적이 있어요. 그 때 차가 도로 가에 있었는데 수백 명의 팬이 무단횡단을 하며 동방신기 차로 뛰어들었죠. 가수도 팬도 다 위험한 상황이어서 결국 멤버들을 저희 경호팀 차로 대피시켰어요.”
―어떨 땐 경호의 대상이 연예인이라기보다 팬들이겠군요.
“판단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감정 조절력이에요. 그 친구(팬)들은 욕구와의 싸움이라면 난 내 감정과의 싸움이겠죠. 스스로 냉철하지 않으면 안돼요. 공연 중 무대 앞에 화약이 터졌는데 커튼에 불이 붙어 난리가 난 적도 있고 공연 도중 호흡곤란을 일으킨 아이 때문에 인공호흡을 한 적도 있고…. 늘 살얼음판이죠.”
태권도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1996년 군에서 제대한 후 경호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경남 양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처음 경호를 맡은 사람은 당시 15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하던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후보.
이후 내한한 마이클 잭슨을 시작으로 조용필 나훈아 ‘H.O.T’ ‘젝스키스’ ‘핑클’ 그리고 지금의 ‘SS501’과 ‘원더걸스’까지 연예인 경호를 도맡았다. 2년 전에는 비의 전담 경호원으로 발탁돼 그와 함께 월드투어를 했으며 이영애 송혜교 장나라 등의 한류 스타 역시 그와 함께 국제선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 머라이어 캐리, 케니 지, 어셔, 알랭 들롱 등 내한한 해외 스타 역시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스타의 기분, 컨디션까지 최상으로 만드는 것이 연예인 경호”라고 말했다. 그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는 가수 이선희. “어릴 적 팬이어서 ‘사심’이 들었다”며 웃었다.
○ 예순 살 현역 경호원이 되는 그날까지
―베테랑 경호원이 됐지만 지금도 ‘빅뱅’ ‘소녀시대’를 쫓아다니는 조카뻘 되는 학생들과 몸싸움을 하겠네요. 가끔은 대통령 경호 같은 폼 나는 일도 해보고 싶을 텐데요?
“한번쯤 영화처럼 총 쏘고 텀블링도 하면서 멋지게 살고 싶죠.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관객 울타리 만드느라 공연 8시간 전부터 공연장에서 망치질하며 말뚝을 박고, 동사무소에서 모래주머니를 빌려 무대 계단을 만들고…. 공사장 일꾼이 된 적도 많지만 “형 덕분에 좋은 공연 했어”라고 스타들이 한마디 건넬 땐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한국의 ‘팬덤(fandom)’ 문화를 현장에서 지켜봐왔는데 그동안 팬클럽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예전엔 조직 하나에 팬들이 단결했죠. 지금은 인터넷 때문인지 스타 한 명당 팬클럽 수가 많아졌더군요. 또 요즘 신세대 부모님들은 무조건 반대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알아서 행사장에 데려다주더라고요.”
그도 팬클럽이 있었다. 공연장에서 그가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도시락을 싸주며 친해진 200여 명의 팬클럽(자칭) 학생은 그에게 ‘검은 정장 속의 부드러움’이란 애칭도 지어주었다.
그런 그도 최근 남모를 속병을 앓았다. 지난해 스트레스로 인한 안면근육 마비 진단을 받고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고 올해는 아버지를 여의였다. 힘들 때 자신을 지켜줄 아내도 없다는 사실에 경호원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의가 들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70점 인생’이라고 한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배필을 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도 비의 해외 스케줄에 맞춰 어쩔 수 없이 검은 양복을 입어야 했다. 여기에 “예순 넘어서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미스터 포마드, 설상가상이다.
“감정 조절이 안 될 때 늘 외치는 말이 있어요. ‘마음을 열어요’라고. 언젠가 검은 정장 속의 부드러움을 알아줄 나만의 ‘경호원’을 만날 때까지.”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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