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메모리’ 부를수 있어 영광
“그리자벨라는 연예계에서 단맛 쓴맛 다 맛본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옥주현(28) 씨에게 배역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 참이었다. 그녀는 19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캣츠’의 여주인공 그리자벨라를 맡았다. 5월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많았다. 단 두 편의 뮤지컬에만 오른 경험이 있는 20대 ‘신인’ 배우에 불과한 그녀가 산전수전 다 겪고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고양이 소굴 젤리클에 돌아오는 그리자벨라 역을 과연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한 연예 경력도 그리자벨라의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16일 ‘캣츠’가 오르는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의 연습실에서 만난 옥 씨는 “아이돌 그룹 경험이 그리자벨라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가 조앤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이 ‘너만의 그리자벨라의 스토리를 만들어라’는 거예요. 그러면 배역에 몰입이 쉬울 거라면서요.”
옥 씨가 상상해 낸 그리자벨라는 젤리클 사회에서 잘 나가는 스타였다가 더 큰 야망을 갖고 유명 연예계 회사와 손을 잡았는데, 회사가 부도나서 악당에 넘어가고 사채 빚에 시달리는 등 산전수전을 겪는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자신의 경험일까? 그녀는 “그 정도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겪지는 않았지만 연예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삶의 굴곡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출신으로 요가 사업도 잘 되고 방송 MC와 뮤지컬 배우로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니까 사람들은 성공 가도를 걸었다고만 생각하세요. 하지만 사업 때문에 법정에도 가야 했고 야심 차게 준비한 솔로앨범은 흥행에 실패하는 등 나름대로 부침이 많았어요.”
옥 씨는 H.O.T 출신인 문희준과 함께 안티팬이 많은 연예인으로 유명했다. 뮤지컬에 데뷔할 때도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다’와 ‘시카고’를 거친 지금 그녀에 대한 안티 팬들은 많이 줄었다.
“아직도 있긴 있는데… 하하. 오래 겪어 보니 내가 잊혀지지 않고 꾸준히 활동한 것도 그들의 관심 덕택이라는 생각에 고맙기도 해요. 요즘같이 바쁜 때 악플이든 뭐든 반응을 한다는 건 대단한 성의거든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쪽지도 많이 오는데 조언이면 ‘감사합니다’ 악의적인 욕설이면 ‘이런 쪽지는 사양합니다’라고 답장도 보내요.”
그리자벨라는 ‘캣츠’의 뮤지컬 사에 남을 명곡 ‘메모리’를 부르는 여주인공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출연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1막과 2막이 끝날 무렵의 15분 정도가 전부다. 지금까지 맡았던 아이다(‘아이다’)나 벨마(‘시카고’) 역과 비교하면 적은 분량이다.
“얼마나 나오고 얼마나 비중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 말마따나 알아볼 수도 없는 망가지는 분장에 노래 한 곡만 하고 들어가는 데 뭐가 좋으냐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캣츠’에서 ‘메모리’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죠.”
옥 씨뿐이 아니다. ‘캣츠’의 그리자벨라 오디션에는 쟁쟁한 여배우들이 참여했다. “‘메모리’의 매력요? 모든 사람의 삶이 담겨있다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이 희로애락을 겪었고 각박한 삶에 지치잖아요. 공연을 보는 순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자벨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2월 31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4만∼12만 원. 1644-0078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