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년전 ‘접속’의 그 곳에서 만난 그녀
영화 ‘멋진 하루’(감독 이윤기·제작 영화사 봄)시사회가 끝난 직후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서울 종로구 피카디리 극장 앞 카페. 11년 전 전도연의 영화 데뷔작 ‘접속’에 등장해 명물이 된 곳이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영화 속 두 주인공 한석규와 전도연이 계단에서 엇갈리는 명장면의 무대이다. ‘접속’의 포스터가 걸려있는 그 계단을 똑같이 걸어 올라온 전도연은 “11년 만에 왔다. 추억이 넘치는 곳”이라며 웃었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까지 있는 큰 배우가 됐지만 전도연은 겉과 안 모두 11년 전 ‘접속’그대로였다.
전도연은 칸 수상 이후 캐스팅 제의 받은 유일한 영화가 ‘멋진 하루’라며 “지난 해 어떤 영화 시사회에 갔었는데 박찬욱 감독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저 착한 배우에요 시나리오 주세요’라고 말했다”며 크게 웃었다.
데뷔 후 줄곧 연기 잘한다는 칭찬만 받았던 전도연 하지만 ‘멋진 하루’는 남달랐다.
“사실 전 그렇게 가진 게 많지 않은데 ‘밀양’과 칸 국제영화제 때문에 부풀려진 것 같아요. 기대치가 커지는 건 정말 무서운 거에요. 시사회 앞두고 노파심, 긴장,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 왔어요.”
‘멋진 하루’에서 전도연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돈 350만원을 받기 위해 용기를 내고 집을 나선 여주인공 희수역을 맡았다.
‘밀양’의 아이 잃은 엄마가 모든 감정을 눈물로 폭발시켰다면 ‘멋진 하루’ 희수는 화가 치밀어도, 사랑을 느껴도 말 한마디 내뱉지 않는 캐릭터다.
“‘밀양’은 소중한 작품이죠. 어마어마한 상도 받게 해줬고. 하지만 ‘멋진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칸에서) 받고 돌아와 처음 캐스팅 제의받은 시나리오가 ‘멋진 하루’.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의받은 시나리오도 ‘멋진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푹 빠져들 수 있는 완성도. 의미가 큰 영화입니다”
● 엄마가 두려웠던 배우 전도연
전도연은 지금 임신 5개월째다. 의식하기 전에는 아이를 가진 엄마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날씬하다. 하지만 스스로 “배가 많이 나왔다. 정말 많이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배가 나오기 시작하며 안심이 된다며 웃었다.
“엄마가 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지만 하고 있는 일이 배우. 여자배우기 때문에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있었어요. 몸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그런데 진짜 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안정도 되고 편안해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는 예비엄마는 아기 덕에 추석명절 시댁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는 호사도 누렸다며 웃었다.
“특별한 태교는 안 해요. 고상한척 못하겠어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아기가 태어난 후 안 놀라죠. 고상하게 태교했는데 태어나서 당황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 “임산부 역할 없나요” 천상배우 전도연
전도연은 다작 배우가 아니다. 1년에 한 편 꼴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내년 2월 출산과 산후조리시간을 생각하면 꽤 오랜 시간 그녀를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다. 하지만 전도연은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갖게 됐다”며 “혹시 임산부 역할 없나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멋진 하루’에서 전도연은 오랜만에 평범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런 만큼 ‘멋진 하루’의 희수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헤어진 애인에게 돈 받으러 온 모습이 까칠하잖아요. 예고편 보고 남편이 연기가 아니라고 놀리며 웃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 안에 희수가 있어요.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것도 그렇고. 저도 사람인데 남편에게 가끔 짜증도 부려요. 그 때 모습은 영화 속 까칠한 희수와 정말 똑 같은 거 같아요(웃음)”
갑자기 생각나 화가 치밀었거나, 아니면 정말 돈이 급했나보다. 서른을 훌쩍 넘긴 노처녀 희수는 추운 겨울날 1년 전 헤어진 옛 애인 병운을 찾아 나선다. 경마장 구석구석을 뒤져 찾은 병운에게 건넨 첫 마디는 “돈 갚아”. 통장으로 부쳐준다는 병운에게 희수는 오늘 꼭 갚으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병운은 사업이 망해 빈털터리. 결국 희수와 함께 아는 여자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갚을 돈, 빌려준 돈 350만원을 다 구할 수 있을까?
‘여자,정혜’, ‘러브토크’,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여성의 섬세한 감성을 표현했던 이윤기 감독의 네 번째 작품. 일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헤어진 옛 연인이 함께 돈을 꾸러 다니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 돈 받으러 나왔다 온갖 고초를 다 겪지만 참고 또 참는 전도연의 절제, 사업이 망해도 당장 잠잘 집도 없지만 환하기 만한, 온갖 사탕발림으로 여성들에게 돈을 꿔서 빚을 돌려 막는 하정우의 능청이 잘 어울려 독특한 재미를 준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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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전도연 · 하정우 주연 영화 ‘멋진 하루’ 제작 보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