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말이 있다. 상대의 말에 따라 더 후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지금 충무로 박정자 할머니가 운영하는 ‘지선이네 순댓국집’에 가면 순대맛 보러 갔다 덤으로 달콤한 도너츠 맛도 보게 된다.
말이 고마워서다. 뮤지컬 ‘한 밤의 세레나데’는 언어의 성찬이다. 돼지 창자, 청량고추, 새우젓, 당면 등 오만 가지 재료가 쏙쏙 박힌 순대처럼 ‘한 밤의 세레나데’는 푸짐하게 언어의 상을 차렸다.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 인터넷 채팅용어, 살짝 정감이 가는 욕설, 촌스러운 70년대 외래어 등 온갖 말을 버무려 관객에게 들려준다.
때론 지나간 유행가가 되어 무대에 흐르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온라인에서 오가는 단어들로 귀에 쏙쏙 박히기도 한다.
이 작품은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엄마 박정자와 다락방에서 홀로 인터넷 자키로 활동하는 박지선, 딸의 남자친구 도너츠가 보여주는 시간 여행이다.
지선이 마이크에 감전당한 덕분에 이들은 2006년 12월 29일에서 1973년 12월 29일로 이동한다. 33년 전으로 돌아가니 “아이고, 징그러버라이” 핀잔하며 우악스러운 말투의 엄마는 온데간데없다. 조신하기 그지없는 통기타 여가수로 변했다. 남자친구 도너츠는 “난 바보야, 사랑해 정자!”하면서 굵은 저음의 느끼한 말을 구사하는 톱스타 박봉팔이 돼버렸다.
주인공들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에 걸맞은 구수한 입담을 뽐낸다.
인터넷 라디오 자키인 지선은 기타를 튕기며 ‘삼땡(33)이 가기 전에’, ‘세계최고 왕또라이’ 등의 노래를 부르고 오두방정을 떤다.
엄마는 과거의 아빠를 만나 ‘나랑 너랑’ 듀엣곡을 들려준다.
실제로 1970년대 활동한 포크 그룹 이름은 ‘뚜아 에 무아’(너랑 나랑)였다. 1973년 복고여행을 떠나는 무대를 훑어보면서,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창작인지 구분해가며 보는 것도 관람의 재미가 될 수 있다.
오로지 뒷모습만 보이면서 정체를 숨긴 오아시스 음반사 사장의 깐죽거림, 엄마의 역정을 산 딸의 푸념, 1970년대를 풍미한 톱 가수의 방송 멘트 등 이 공연에는 다양한 색채의 문장과 대화, 노래들이 가득 차 있다.
공연을 보기 전에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우들의 공연을 볼지, 경상도 팀을 볼 지 일단 선택권이 주어진다. 한밤의 세레나데는 이번이 앙코르 공연이다. 다음 공연에는 강원도, 함경도, 충청도 팀으로 뻗어나가려나? 사투리 말고도 순댓국 재료 중 하나인 ‘오소리감투’를 알고 가도 좋다. 돼지 ‘귀’인지 ‘위’인지 맞히면 공연 전 선물을 받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공연일시:8월 22일∼10월 19일,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6시
공연장소: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관람가격:2만원, 3만원 (임신부 50% 할인·33세 처녀총각 30%)
문의:02-2230-6600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관련기사]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스포츠동아’ 가족을 모십니다
[관련기사]‘야채 프린스’의 희망 비타민 “싸요! 싸”…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