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공장’ 사람들 보기와는 딴판
“‘다 쓸어버리라우!’ 어때?”(박성호·1997년 KBS 공채 13기) “너무 독해요.”(‘개그콘서트’ 작가 이미림)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개그콘서트’ 작가실. 북한의 예술인들이 ‘대장 동무’(박휘순)에게 장기를 선보인다는 설정으로 KBS2에서 21일 첫 방송된 새 코너 ‘대포동 예술극단’의 멤버들이 다음 주 녹화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21일 방송에서는 ‘생활 사투리’ ‘고고 예술 속으로’ 등 개그콘서트의 지난 인기 코너와 ‘왕비호’를 패러디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대놓고 하자는 얘기잖아. 돌려 쳐야 돼. 앞에서 은유적으로 할수록 뒤에서 몇 번 더 터진다니까.”(김시덕)
“박지선, 너는 방청객이야!”(김현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내자우요’….”(박지선)
“‘때가 왔소’ 어떻습니까?”(이광섭)
“너 휴거당하고 싶냐?”(박성호)
작년 공채에 합격하고 이번 코너에서 ‘대장 동무’의 측근 역을 맡은 이광섭(28)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농담조지만 ‘코너에서 빼버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말이다. 더구나 이광섭은 이날 오후 1시로 잡힌 회의에 늦기까지 했다. 서로 웃고 떠들면서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 같은 개그맨들의 회의지만 어느 곳보다 진지하다.
“‘이판사판이오’가 좋다는 사람 손 드세요.”(박성호)
박지선 등 신인급 3명이 손을 든다. 이광섭은 왼손을 들었다.
“오른손 부러지고 싶냐?(이광섭, 얼른 왼손을 오른손으로 바꿔 든다) ‘이판사판’으로 가겠습니다.”(박성호)
이광섭은 “선배 아이디어가 마뜩잖으면 헛기침을 하면서 뜻을 표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경험에서 나오는 선배의 말이 맞을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5분가량 방송되는 이 코너를 만들기 위해 목 금 토요일은 아이디어 회의, 월요일은 동작과 함께 연습, 화요일은 리허설, 수요일은 녹화다. 물론 녹화가 된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통으로 편집에서 잘린다. 이날도 30여 명의 개그맨이 코너별로 삼삼오오 모여 아이디어를 짜냈다.
“새 코너 하겠습니다!”
새 코너를 준비한 개그맨들이 옆방의 PD 앞에서 심사를 받는다. 방송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5분 사이에 결정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일권(21기) 등 4명의 신인급 개그맨이 진지하게 연기하지만 1분쯤 지나자 심사하던 작가의 손이 조용히 올라간다. 멈추라는 뜻이다.
“(더 준비해서) 다음 주에 하자고 했잖아….”
살벌한 분위기를 누군가가 수습해 보려 한다. 심사하던 ‘개그콘서트’ 김석현 PD가 전화를 받는다. 새 코너 후보가 쓸 만한데 중요한 전화가 왔으니 잠시 후 자세히 보자는 뜻에서 손이 올라갔던 것. 오히려 다행이다.
“안일권 등의 코너도 괜찮았는데 비슷한 콘셉트의 코너가 마침 있어서 어떤 것으로 결정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심사 분위기는 긴장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어떤 코너든 최종 평가는 시청자가 합니다.”(김석현 PD)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회의 중 개그 대사는 임의로 수정)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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