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1>김인철 교수 설계 ‘오르는 집-틸트 업’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경기 광주시의 ‘오르는 집’은 가파른 경사지를 길게 빙 둘러 오르는 공간이다. 층고를 조금씩 높이면서 죽 이어 붙인 개인 공간에는 서로를 향해 열린 창문이 있다(위). 바닥의 나무는 각 실과 공간 내·외부를 연결하는 재료로 쓰였다. 사진 제공 아르키움 건축사사무소
경기 광주시의 ‘오르는 집’은 가파른 경사지를 길게 빙 둘러 오르는 공간이다. 층고를 조금씩 높이면서 죽 이어 붙인 개인 공간에는 서로를 향해 열린 창문이 있다(위). 바닥의 나무는 각 실과 공간 내·외부를 연결하는 재료로 쓰였다. 사진 제공 아르키움 건축사사무소
《스위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 주택은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축 영역. 주택 건축 디자인과 더불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바뀌고 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채워진 주택 건축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경사지 깎지 않고 ‘자연의 멋’ 그대로

“정원 중심 U자형 안으로 트인 공간”

가파른 경사지에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경사지를 깎아내고 옹벽(擁壁·흙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벽)을 쌓아 최대한 평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김인철(61)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가 설계한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의 ‘오르는 집-틸트 업(tilt up)’에는 주어진 땅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려는 고민이 녹아 있다.

건축주 부부는 옹벽공사를 시작한 2006년 10월 김 교수의 아르키움 건축사사무소를 찾았다. 애초 평범한 전원주택 계획안에 동의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것.

이들은 “예쁜 집을 갖고 싶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보기에 ‘예쁜’ 집은 개발업자가 잘 만들 것”이라며 “살기 좋은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답했다.

김 교수는 경사지를 깎아내는 토목공사를 중단시키고 6개월 뒤 ‘경사를 비스듬히 타고 오르는 집’의 설계도면을 내놓았다.

“경사를 건축물의 한계로 여기지 않고 특징으로 살리고 싶었어요. 땅을 깎아 건물을 묻거나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바로 오르지 않고, 길게 빙 둘러 오르는 공간을 제안했습니다.”

집의 평면은 ‘U’자의 왼쪽 끝을 잡고 바깥으로 약간 눌러 편 모양이다.(평면도 참조) 휘어진 공간을 따라 침실-거실-식당-서재-안방 등이 죽 이어져 놓였다.

1층 출입구에 들어서서 계단을 오르다가 왼편으로 꺾어지면 딸의 침실이 나온다. 오른편 계단으로 반 층 더 올라가면 볕이 잘 드는 널찍한 거실을 만난다. 거실을 지나 식당까지가 손님을 맞는 공간이다.

식당 뒷문을 열면 계단 옆으로 서재, 이어서 아들 방이 나온다. 아들 방 옆쪽 계단으로 한 층을 더 오르면 안방이다.

10m 높이를 3개 층에 분산시켜 차례로 올라가도록 한 공간. 건물이 빙 둘러싼 정원을 포함시키면 동선(動線)이 다양해진다. 출입구, 거실, 복도, 안방 어디서든 곧바로 정원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로 죽 이어진 공간 안에서 4명의 가족은 다른 구성원의 움직임을 늘 가까이 느낀다. 하지만 늦은 밤 귀가해 잠든 가족을 깨우기 싫은 아버지는 조용히 정원을 지나 안방에 이를 수 있다. 아기자기한 동선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을 여럿으로 쪼개 막은 아파트의 방은 구성원을 고립시킨다. ‘오르는 집’의 방들은 정원으로 트인 창문을 가졌다. 그 창을 통해 가족은 각자의 공간에서도 모두를 느낀다. 김 교수는 “한국의 전통 주거도 개인 공간을 길게 이어 하나로 연결한, 안으로 트인 집”이라고 말했다.

이 집은 1년 2개월의 공사 끝에 올해 6월 완공됐다. 택지 매입비를 제외한 설계비와 공사비를 합쳐 3억5000만 원이 들었다. 연면적은 230m².

김 교수는 노출콘크리트를 주로 쓰고, 이음매에 마루처럼 깔아놓은 나무판 외에는 장식을 자제했다. 나무 마루는 방과 거실, 거실과 복도, 건물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집이라는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그 안의 사람들이죠. 건축가는 한 가족이 삶의 배경으로 삼을 공간을 잘 비워놓으면 되는 겁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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