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18일 개봉한 ‘미러’는 시인 이상이 궁금해했던 ‘거울 속 세계’를 ‘악령의 공간’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거울에 비친 반사체가 원형(原形)을 공격한다는 설정. 매끄러운 바닥에 비친 자신의 반사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에 뛰어들어 죽은 나르시스 신화의 섬뜩한 변주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한국 영화 ‘거울 속으로’(2003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성호 감독이 백화점 거울 속 공간을 짜임새 있게 연출한 작품입니다.
밀폐된 방 안에 놓인 커다란 거울은 그 안쪽 공간으로의 통로를 상상하게 하죠. 사방이 거울로 막힌 방에 무수히 비치는 반사체는 현기증과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거울 공간의 기묘한 분위기는 많은 영화에 활용됐습니다.
‘용쟁호투’(1973년)에서 리샤오룽은 거울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입니다. 할리우드 액션영화 ‘샤도우’(1994년), ‘탱고와 캐쉬’(1989년)에서도 거울의 방이 클라이맥스에 등장합니다. ‘폴터가이스트’(1982년), ‘캔디맨’(1992년)은 ‘미러’처럼 거울 속 공간의 악귀에 대한 이야기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원작인 가스통 르루의 추리소설에도 거울의 방이 나옵니다. 건축가였던 유령 에릭이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만든 고문실. 거울 벽으로 둘러싸인 육각형 평면의 방입니다.
건축에서 거울은 창문을 낼 수 없는 답답한 공간에 숨통을 틔우는 데 유용한 장치입니다.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의 답답함을 생각해 보세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본관 2층의 ‘거울의 방’은 관광 명소입니다. 정원을 향한 17개의 아치형 창문 반대쪽 벽면에 배열한 17개의 아치 모양 거울. 길이 73m, 높이 12.3m의 벽면에 거울과 창문의 대구가 17번 이어집니다. 하지만 반사체로 인한 드라마틱한 느낌은 기대보다 크지 않습니다.
인도 자이푸르의 암베르 성에도 ‘거울의 방’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베르사유 거울의 방처럼 반사체의 몽롱한 느낌보다는 세공 벽과 유리 천장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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