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성지 ‘통곡의 벽’ 가보니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45분


‘갈등의 벽’ 허물고 평화의 간구만…

《20일 오전 9시 옛 예루살렘 성의 서쪽 벽.

이른 시간이지만 ‘키파(작은 모자)’와 검은색 정장 차림의 유대인들이 벽 주위에서 몸을 흔들며 낮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다.》

통곡의 벽이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성지 중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장소의 하나다.

서기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히 파괴했는데 서쪽 벽 일부가 화를 면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 이후 유대인들은 이 벽을 마주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해 통곡했고, 이곳 기도가 2000년 방랑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꿈을 이뤄줄 것으로 여겼다.

통곡의 벽에서는 히브리어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수십 개의 언어로 현실로부터의 구원과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벽의 틈에는 소원을 비는 종이들이 두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박혀 있다.

한쪽에는 보이스카우트를 연상시키는 10대 소년 소녀 40명이 안내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그루지야에서 온 순례단이다.

안내자인 로만 시제프스키(23) 씨는 “그루지야에는 7500명 정도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돼 있다”면서 “청소년 순례는 자신의 뿌리와 정신을 이해시키는 좋은 계기”라고 말했다. 그루지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선조처럼 이스라엘 이주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노코멘트”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곳은 남녀가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나누어져 있고 남성들은 반드시 키파 또는 모자(관광객)를 쓰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안식일에는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 글씨를 쓰는 것이 금지돼 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고난의 길이라는 뜻으로 예수가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수난의 길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은 약 800m로 재판정에서부터 예수가 쓰러지거나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만난 곳 등 14개 장소를 기념하는 교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제8지점은 성경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장 28절)”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김규원 여의도순복음교회 홍보실장은 “비아 돌로로사는 매년 많은 한국인 순례자가 십자가를 직접 지고 주님의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길을 찾은 이들은 당혹스러운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폭 2m 안팎의 좁은 길에서 예수의 흔적을 놓치지 않으려는 순례자들과 물건을 파는 것 외에는 관심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출신의 30대 남성 곤살레스 씨는 “순례단에 스페인은 물론 멕시코 온두라스 등 5개 국가의 참가자들이 섞여 있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사해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차지한 도성 예리코, 바싹 말라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요르단강을 건너 티베리아스의 갈릴리 호수에 도착했다.

그 다음 날 오전 공교롭게도 자신을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인이라고 밝힌 마리아라는 이름의 50대 여성을 호숫가에서 만났다.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이 갈릴리 호수 근처다.

“갈릴리에서 내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해졌다.”

그의 바람이자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21세기의 기적일 것이다.

티베리아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유일한 한국인 봉직자 김상원 신부

“골고다 언덕 ‘성묘교회’는 종파 화합의 상징”

“이곳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시고 묻히고 부활하신 공간입니다. 여러 성지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심장 같은 곳이죠.”

20일 낮 12시경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골고다 언덕의 성묘교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곳에서 봉직 중인 ‘작은 형제회’ 소속 김상원(42·사진) 신부를 만났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로 알려진 작은 형제회는 가톨릭을 대표해 한국과 이탈리아 미국 인도 브라질 폴란드 가나 등에서 10명의 신부를 성묘교회에 파견했다.

이 교회는 335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피터 신전을 없애고 건립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을 비롯해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콥트 교회 등 6개 종파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12세기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한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사용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열쇠는 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슬람의 두 가문 중 한 가문이 열쇠를 갖고, 다른 가문이 기독교 측에 열쇠를 전달했다 돌려받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성묘교회를 관리하는 6개 종파는 특정 시간에 교회 관리를 책임지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교회를 청소하는 것조차 권한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콥트 교회의 경우 예수 무덤 안에서 전례 행위를 거행할 수 없다.

그는 “종파 간 갈등을 막기 위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스테이터스 쿼(status quo)’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고 서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며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종교를 내세워 남보다 우위에 서거나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루살렘=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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