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위안의 詩]황지우/‘너를 기다리는 동안’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이 기다림은 애절하고 날카롭다. 문을 향한 시선은 금방이라도 폭발하거나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히’는 일이 ‘쿵쿵’ ‘가슴 애리’게 반복되는 한 그렇다. 그러나 기다림은 이 숨 막히는 무정한 반복을 견딘다. 기다림이란 ‘오지 않는 너’를 대신해 ‘너’의 ‘직전’까지 ‘나’의 사랑의 마음과 자세와 언어들을 가져가는 일이며, 가망 없는 순간에 ‘마침내 너에게 가’는 갸륵한 일이다.

그렇다면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시가 더없이 간절하게 쓰이고 읽히는, 순연한 시의 시간이다. 시는 ‘내’가 ‘너’의 ‘직전’에 있음을 일깨우며, ‘너’의 ‘직전’에서 가장 눈부시게 번성한다. 황지우의 말처럼 ‘녹 같은 기다림’의 시대였던 1980년대가 ‘시의 시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시의 시작 메모에 황지우는 이렇게 써 놓았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마침내 너에게 가’는 능동성의 숨은 힘은 실은 ‘초조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단 그 시대뿐일까. 기다림의 많은 대상은, 그에 대한 간절함과 초조함은 다른 형태로 여전히 현존한다. 파격적인 실험과 해체의 전략으로 잘 알려진 황지우는 이 시에서는 유독 별다른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기는 기다림 앞에 어떤 전략이 소용이 있을까. “너를 기다리는 동안 마침내 너에게 가”는 것 이상의 전략을 고안해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나 자신을 오롯이 던지는, 이렇듯 의연하고 아름다운 전략 외에는.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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