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와 자기 파괴와 자유와 댄디즘을 아울러 가지고 사는 알짜 보헤미안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예술가 치고 자기 파괴와 자유를 꿈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미 쥐약을 정량으로 먹은 예술가가 아니라면 어찌 그 꿈에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보헤미안’ 중에서)
등단 50주년을 맞은 황동규(70) 시인이 7여 년 만에 산문집을 엮어냈다. 그간 월간 현대문학, 계간 대산문화 등에 연재했던 글 35편을 모은 것이다. “나이 들어 기억도 건강도 나빠졌지만 상상력은 오히려 더 왕성하다. 나이와 거꾸로 가는 상상력 덕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고통스럽다”는 황 시인은 “작가에게 만족이란 없지만 이번 산문집은 인간과 인간관계에 관한 시각이 잡힌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로 문인으로서 생활에서 마주치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경험들은 인간과 삶에의 완숙한 시선, 문학과 철학으로 다져진 세계관을 만나 깊이가 더해진다. 황 시인은 버클리대의 방문교수 시절 지독했던 외로움을 극복하고 ‘홀로움’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외로움과 홀로움’), 박경리 이청준 선생 등 잇따른 주변 소설가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관한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삶의 향기 몇 점’). 각 편마다 삶을 가로지르는 노시인의 혜안이 묻어난다.
“좋은 산문은 인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세계를 보여주는 눈의 깊이가 있어야 하며 문장이 독자를 끌 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황 시인은 “많이 깎아야 하는 시에 비해 산문은 행간의 전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좀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에 출간할 시집을 집필 중이라는 그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계획 세우며 늙기엔 너무 늙었다”며 “이젠 덤으로 살고 있다는 기분으로 ‘상상력’을 붙들고 창작에 전념하는 것 외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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