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의 울림 깊어진 시인의 산문…‘삶의 향기 몇 점’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 삶의 향기 몇 점/황동규 지음/276쪽·1만 원·휴먼앤북스

“문재와 자기 파괴와 자유와 댄디즘을 아울러 가지고 사는 알짜 보헤미안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예술가 치고 자기 파괴와 자유를 꿈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미 쥐약을 정량으로 먹은 예술가가 아니라면 어찌 그 꿈에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보헤미안’ 중에서)

등단 50주년을 맞은 황동규(70) 시인이 7여 년 만에 산문집을 엮어냈다. 그간 월간 현대문학, 계간 대산문화 등에 연재했던 글 35편을 모은 것이다. “나이 들어 기억도 건강도 나빠졌지만 상상력은 오히려 더 왕성하다. 나이와 거꾸로 가는 상상력 덕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고통스럽다”는 황 시인은 “작가에게 만족이란 없지만 이번 산문집은 인간과 인간관계에 관한 시각이 잡힌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로 문인으로서 생활에서 마주치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경험들은 인간과 삶에의 완숙한 시선, 문학과 철학으로 다져진 세계관을 만나 깊이가 더해진다. 황 시인은 버클리대의 방문교수 시절 지독했던 외로움을 극복하고 ‘홀로움’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외로움과 홀로움’), 박경리 이청준 선생 등 잇따른 주변 소설가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관한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삶의 향기 몇 점’). 각 편마다 삶을 가로지르는 노시인의 혜안이 묻어난다.

“좋은 산문은 인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세계를 보여주는 눈의 깊이가 있어야 하며 문장이 독자를 끌 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황 시인은 “많이 깎아야 하는 시에 비해 산문은 행간의 전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좀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에 출간할 시집을 집필 중이라는 그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계획 세우며 늙기엔 너무 늙었다”며 “이젠 덤으로 살고 있다는 기분으로 ‘상상력’을 붙들고 창작에 전념하는 것 외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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