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CIA는 죽었다?…‘잿더미의 유산’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0분


◇ 잿더미의 유산/팀 와이너 지음·이경식 옮김/1000쪽·3만50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CI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7년 창설됐다. 6·25전쟁은 CIA가 ‘존재 이유’를 알릴 수 있는 첫 무대였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전에 전면 개입할 징후는 없다’ ‘한국에 대한 소련의 모험은 실패로 끝났다’는 잘못된 정보만 남발하다 체면을 구겼다.

저자는 이때부터 시작된 CIA의 실패가 60년 동안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그 실패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950년 10월.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중국이 개입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 가능성은 없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나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군의 대규모 기습으로 유엔군은 남쪽으로 끝없이 밀려났다.

1964년 8월 7일 미국 의회는 북베트남이 베트남 인근 공해에서 미국 함정에 공격을 가했다는 정보를 토대로 ‘통킹만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베트남전쟁을 공식 승인했다. 그러나 뒤에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북베트남의 초계정들이 미국 함정을 먼저 공격했다는 것은 허위 정보였다.

정보 부족도 문제였다. 호찌민 정부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던 CIA는 호찌민 정부의 고위층을 전혀 파고들지 못해 올바른 정보를 내놓지 못했다. 미국이 베트남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 데는 이런 정보 부족과 허위 정보가 큰 원인이 됐다. 그리고 40년 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CIA의 오판은 또 다른 전쟁에 원인을 제공했다.

CI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7년 창설됐다. 따라서 6·25전쟁은 CIA가 ‘존재 이유’를 알릴 수 있는 첫 무대였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전에 전면 개입할 징후는 없다’ ‘한국에 대한 소련의 모험은 실패로 끝났다’는 잘못된 정보만 남발하다 체면을 구겼다.

저자는 이때부터 시작된 CIA의 실패가 60년 동안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그 실패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기자이면서 20여 년 동안 미 정보기관에 대한 글을 써 왔다. 그는 “5000건이 넘는 문서, 정보국 관리 군인 등이 밝힌 2000건이 넘는 증언, 1987년 이후로 CIA 국장을 지낸 10명을 포함한 전현직 요원들을 상대로 한 300건 이상의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상황에 대해 CIA가 “추측만 하고 있다”고 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CIA는 몇몇 성공을 제외하고는 줄곧 실패만 거듭했다고 꼬집는다.

1953년 8월 소련이 최초의 대량살상무기를 실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소폭탄에 맞먹는 것이었는데도 CIA는 소련이 이런 실험을 할 것이라는 단서를 포착하지 못했다. CIA의 한 간부는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 대부분의 정보 담당자는 카스트로 정권이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으로 예측했다”고 저자에게 밝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CIA는 적의 정보를 더욱 세밀하게 파악하게 됐다. 첩보위성을 통해 소련의 온갖 무기를 파악하고 무기의 구체적 수까지 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정보력은 커졌지만 CIA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정보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징후도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다.

CIA는 결국 국방부에 정보 업무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미국 정보 분야에서 ‘2류 조직’으로 밀려난 상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런 실패의 원인으로 ‘현지를 아는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토머스 허버드는 CIA본부에서 수많은 북한 전문가를 만났지만 200여 명 가운데 북한에 가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저자에게 털어놨다.

저자 역시 1987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취재 여행을 떠나기 전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아프간 담당자 4명을 만났지만 모두 아프간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적과 맞서고 있으면서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공백을 편견으로 채우려는 위험한 의식이 미국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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