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담장 허물고 도서관-산책길 주민 품으로
“학교마을도서관은 단순한 시골 마을도서관 이상의 성격을 지닙니다. 학교가 사회적 문화적 거점으로 자리 잡아 쇠락하는 농촌 사회를 되살리는 ‘학교개방화정책’에서 도서관은 그 중심이 될 것입니다.”(최순각 강릉시 평생학습추진단장)
11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성산초등학교. 이날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의 133번째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이곳의 행사는 여느 개관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즐거운 축제이면서도 주민들 눈에는 묵직한 ‘결의’가 느껴졌다. 김동철 성산초교장도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으로 구산리 지역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은 도서관에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뭘까. 학교마을도서관 사서도우미를 맡은 주민 김혜숙 씨는 “이제 농촌사회를 다시 일으키는 구심점은 학교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농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문화 소외만을 겪는 게 아니다.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산업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많아 적극적인 지역 사회 활동도 어렵다. 다문화 가족이나 결손 가족과 어울릴 만한 공간도 필요했다. 마을회관이나 청년회관도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농촌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 단장은 “이런 환경에서 학교가 살아나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시골 학교라고 하지만 좋은 인프라만 마련되면 학부모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학생 수가 늘어나면 자연히 젊은 학부모들도 많아지고, 이는 지역 내 청장년층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형성될 기반이 구성되는 셈이다.
구산리 지역주민과 교사들은 학교마을도서관이 그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를 위해 학교 동문들이 적극 나섰다. 동문 기금으로 세워진 별관 건물 ‘청운관’을 시와 교육청의 도움을 얻어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사서도우미를 자청한 김 씨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김 씨는 “이제 첫 번째 단추를 채웠을 뿐”이라고 말했다. 학교개방화정책이 시작되면서 학교 담장을 없애 주민들이 자연스레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운동장 옆 솔숲도 주민 산책공원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별관건물을 도서관으로 만든 것도 주민들이 학생들의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김 교장은 “최소한의 인프라가 갖춰졌으므로 이제부턴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서관 이용 활성화를 위해 교직원과 학생들이 나서 책을 빌려주고 반납하는 ‘책 주머니 시스템’도 마련했다. 주민독서모임이나 북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도 늘려갈 계획이다.
이날 개관식에는 문부춘 부시장과 김진춘 강릉교육장을 비롯해 강릉지역 초등학교 교장, 지역공무원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학교개방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었다. 문 부시장은 “학교마을도서관이 학생 교직원 주민 공무원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 통합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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