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초기(1·2번) 중기(3번), 후기(4·5번)에 걸쳐 작곡된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5곡은 그의 사계가 오롯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변주곡 3곡까지 아우르는 대장정. 비스펠베이와 멜리코프(피아노)가 들려준 베토벤은 가을이었다. 가을이되 우수와 고독에 젖은 가을이 아닌 가을운동회와 같은 흥겨움이 있는, 새털구름 몇 점 뛰노는 청명한 그런 가을하늘.
생동감 넘치는 1번을 연주할 때 가벼운 어깨춤을 곁들이며 활을 그어대는 비스펠베이는 마치 운동회 날 아침 코스모스 살랑이는 길을 등교하는 아이 같았고, 비브라토를 최대한 자제하는 그의 주법은 가볍되 깊은 울림을 담아냈다. 새털마냥 떨어지는 낙엽일지라도 그 풍경이 주는 사색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처럼.
시냇물이 모퉁이를 돌며, 소곤거리며, 때로 소용돌이치며 흐르듯 피아노와 주고받는 대화는 이 곡이 내포하고 있는 삶의 열정과 격정, 그리고 유머와 희열을 진한 호소력으로 전해주었다.
기존 곡의 골격을 죄다 해체하고 모던한 해석으로 그만의 구조를 다시 쌓아 흡사 재즈를 들려주듯 늘 새로운 연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비스펠베이. 요요를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자유자재로 늦추고 당기며 내는 그의 운궁은 선 몇 개로 특징을 잡아내는 캐리커처처럼 간결해보이지만 그것이 들려주는 소리는 뚝뚝 낙화하는 봄날의 목련 같지 않고 세월 속에 조금씩 스러지는 국화 같은 것이었다.
이 가을, 몸서리치게 한 여자와 다시 연애를 하고 싶어졌다.
정용진 |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