應(응)은 應當(응당)처럼 마땅하다는 뜻이다. 應有盡有(응유진유)는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처럼 긍정적인 추측을 나타내어 대개 또는 아마도의 뜻으로도 쓰인다. 應答(응답)하다, 對應(대응)하다, 適應(적응)하다의 뜻도 있다.
飛(비)는 날다, 鴻(홍)은 큰 기러기이다. 踏(답)은 밟다의 뜻으로 足(족)이 의미요소이다. 踏步(답보)는 발걸음을 내딛다 또는 제자리걸음을 뜻한다. 踏靑(답청)은 푸른 풀을 밟는 것으로 淸明(청명) 전후에 들에 나가 산보하는 풍속을 가리킨다. 조사하다의 뜻도 있다. 踏査(답사)는 실지로 조사함을 뜻한다.
泥(니)는 진흙이나 진창이다. 雪(설)은 눈 또는 희다는 뜻 외에 雪辱(설욕)이나 雪恥(설치)처럼 씻다의 뜻도 있다. 雪泥(설니)는 눈이 온 후의 진창이다. 雪泥鴻爪(설니홍조)는 눈 내린 진창의 기러기 발자국으로 일이 지난 뒤의 흔적을 비유한다. 줄여서 雪泥(설니)라고도 한다.
인생은 눈 내린 진흙 밭에 우연히 발자국이나 남기고 사라지는 기러기와도 같은가. 곧 지워질 의미 없는 발자국이나 남기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라질 뿐인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사원에서, 예전에 맞이해 주었던 스님은 죽어 탑으로 남고 벽에 남겼던 글씨는 지워져 사라진 것을 보고 지었다. 당시에 26세였으니 천재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도 일찌감치 깨달았다. 蘇軾(소식)의 ‘和子由승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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