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어쩌면 당신은 편지를 써 본 지 꽤 오래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밀려와 가슴에 살림을 차렸던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의 첫 구절처럼 ‘자고 나면 생이 슬퍼진다’는 구절을 밤새도록 방에서 어룽어룽 발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쓸데없는 편지를 부치고’ 돌아온 오후에 소인처럼 아득해지던 날, 우리에겐 이 세상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보냈던 그 편지를 후회한 적이 많았습니다.
편지란 이쪽의 누군가가 저쪽의 누군가에게 배달하는 수평선 같은 것인데 상대에게 건너가면서 점점 지워지는 그 선을 연필로 다시 한 번 곱게 그려 넣어 주고 싶어집니다. 언제나 차마 다 하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는 것이라는 생각, ‘우체통처럼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은 여백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닮아 천천히 바래가는 우체통에 주머니에서 꺼낸 우표 하나 남 몰래 꾹 붙여두고 오고 싶은 저녁입니다. 우표를 단 우체통은 그날 밤 통째로 자신에게 배달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