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 노름 중독, 대마초 중독에 차례대로 빠져 집안 재산을 다 날려먹고 ‘한 여자의 인생을 확실하게 조져놓고’ 만 아버지. 교도소 수감생활 중 이혼당한 그가 내게 “친구하자”고 말한다. 지난날의 과오를 고백하며 새삼 친근하게 접근하는 아버지는 최근 들어 습관처럼 또 다른 중독에 빠졌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눈물중독증’이다.(‘지금 행복해’)
성석제 작가가 열한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전작들처럼 이번 소설집 역시 사회 비주류 인물들의 비루한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면서도 가슴 한 쪽을 찡하게 하는 감동을 끌어낸다.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 표제작 ‘지금 행복해’. 무책임과 무능력의 결정판인 가장의 모습을 아들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소설에 나타난 아버지상은 비난과 질타,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연대와 연민의 대상이다. 결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동료애가 티격태격하는 부자 관계 속에 따스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여행,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체험한 것들에서 많은 상상력을 얻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친구들과 함께한 무전여행, 설악산 등반, 피서지로 간 계곡에서 벌어지는 일 등 일상적 공간을 벗어나서 생기는 여러 소극을 유머 넘치게 담아냈다.
반면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건조한 문체와 모자이크식 사건 전개로 현대사회의 비인간성을 드러낸 ‘톡’, 남의 그림으로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 화가로 성장하게 된 남자의 회고담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등이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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