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3>유진상 교수 자택 ‘자하루’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하늘을 머금고 땅과 호흡하고

“건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파트에 살 수 없다.”

유진상(39) 창원대 건축학부 교수가 경남 창원시 사파동 34-1 자택 ‘자하루(自下樓)’를 지으며 했던 다짐이다. 자하루에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옥탑방 생활을 경험한 유 교수는 하늘을 이고 자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 뒤로 머물렀던 4개의 옥탑방을 개조한 것이 주택 건축 디테일의 실전 경험이 됐다. 칠과 도배는 기본이고 버려진 가구를 분해해 붙박이장과 미니바도 만들어놓고 살았다.

“유학을 마치고 학교에 자리를 얻었을 때 주변에서 다들 아파트를 사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련했다면 집값 많이 올랐겠죠. 자하루 때문에 땅 사고 집 짓느라 은행과 친지로부터 빌린 돈을 아직 못 갚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웃음)

2006년 9월부터 11월까지 설계작업을 하고 12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완공까지 용지 매입비를 제외하고 건축비로 1억8000만 원이 들었다. 연면적은 120.87m². 2층 위에 올린 천장 높이 2m의 다락은 작업실로 쓴다.

설계는 대학원 때부터 공동 작업을 해 온 이학규(36) 공간조형실험아뜰리에 대표와 함께 했다.

이 대표는 “화가 몬드리안과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에 열광하는 비슷한 취향 덕분에 죽이 잘 맞는다”며 “아이디어를 서로 비평하는 과정이 더 섬세한 디테일을 뽑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하루는 유 교수가 손수 쌓은 나지막한 시멘트블록 담 안에 세워진 흰색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북쪽과 서쪽에 면한 도로에 서서 바라본 입면은 얼핏 심심하다. 하지만 북쪽의 현관을 들어서면 4개의 옥탑방을 개조한 경험을 아기자기한 디테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 교수는 부인 배은령(30) 씨와 쓰는 안방 등 사적 생활공간을 2층에 띄웠다.

“주택용지는 도로보다 지면이 낮은 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60cm 정도 높아요. 인근 비음산 기슭에 주거단지를 만든 사람들이 도로에서 걷어낸 토사를 주택용지에 쌓아 놓았기 때문이죠. 이왕 그렇게 됐으니 아예 안방을 한 층 올려서 조망을 시원하게 확보하기로 한 겁니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오르면 남쪽 통유리창을 통해 창원 시내 풍경이 한가득 들어온다. 그 왼쪽에 계단 위로 따로 낸 기다란 쪽창은 유 교수가 자기 집을 손수 짓는 ‘특권’을 살린 장치다.

“쪽창 너머로 아랫마을 정자나무가 보이죠? 처음 용지를 살필 때 방향을 가늠하니까 이곳에 위아래로 길쭉한 창을 내면 동양화 족자처럼 멋질 것 같더라고요. 이런 재미는 아파트에서 절대 느낄 수 없죠.”(배은령 씨)

2층 거실과 안방을 잇는 복도 옆 벽에는 발목 높이의 긴 창을 설치했다. 건축가가 자신의 좋은 기억을 2세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마련한 디테일이다.

“어렸을 때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사람은 알아요. 방에서 노는 것보다 통로나 계단에 앉아서 노는 게 재미있죠. 복도에서 뒹굴며 놀던 아이들이 틈새 유리창을 통해 다른 곳을 볼 수도 있죠. 지나다니는 어른에게도 흥미로운 채광이 되고요.”

생활공간 아래 1층 전체는 개방된 공간이다. 도로에 면한 서쪽으로 전창을 내고 툇마루를 깔았다. 방문객은 현관에 들어서서 마주치는 얕은 직사각형 연못가에 둘러앉거나 툇마루로 나간다. 건축가가 직접 살아가며 고쳐가는 건축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배려가 담긴 공간이다.

“이 집은 언제나 미완성입니다. 삶이 바뀌면 공간도 변해야 하니까요. 가느다란 철제 빔만 붙여놨던 계단 난간에 얼마 전 투명 아크릴판으로 칸막이를 달았습니다. 50일 전에 태어난 딸 리지를 위해서예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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