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남 주기 아까운 그녀’의 古城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49분


콧대 높게 우뚝? 알고보면 따뜻한 백기사같은…

9일 개봉하는 ‘남 주기 아까운 그녀’는 영국 스코틀랜드 서안 스카이 섬에서 벌어지는 청춘남녀의 결혼식 헛소동을 그린 영화입니다. 비슷한 소재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년)에 비해 이야기가 맛깔스럽지 못하지만, 섬의 고즈넉한 풍광을 즐기는 재미는 넉넉합니다.

등장인물들이 머무는 멋진 고성(古城)의 이름은 ‘던베건’. 물가에 우뚝 선 묵직한 위용이 첫눈에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스텔 델로보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볼수록 어쩐지 그보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입니다.

12세기에 세워진 카스텔 델로보는 노르만족의 해안 요새였습니다. 한때 왕족의 거처이기도 했지만 주로 감옥과 군사시설로 사용됐죠. 그에 비해 9세기에 세워진 던베건 성은 스카이 섬의 씨족 매클레오드 가문 사람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입니다. 성 여기저기에 배어 있는 사람 사는 온기가 스크린을 통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폴 웨일랜드 감독은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이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장소를 찾다가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중 성 안에서 벌어지는 큰 돌 던지기와 줄다리기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결혼 축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예비신랑은 이 놀이에서 이겨 자신의 힘을 인정받아야 신부를 데려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촬영 배경은 대부분 던베건 성이지만 분위기에 따라 다른 성의 공간이 짜깁기됐습니다. 성 내부 장면에는 옥스퍼드 근처의 브러턴 성이 자주 등장합니다.

스카이 섬 알시 호수 바위섬 위의 에일리언 도넌 성도 몇몇 야외 장면에 나옵니다. 이 성은 13세기 스코틀랜드 알렉산더 2세가 바이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웠습니다. 이 성 역시 뛰어난 풍광으로 여러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하이랜더’(1986년)입니다. 숀 코너리와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목이 잘려야만 죽을 수 있는 불사신 기사로 등장한 영화였죠. 지난해 ‘엘리자베스: 더 골든 에이지’도 이 성을 배경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남 주기…’에서는 이 모든 장면이 하나의 성인 것처럼 보입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칼리나 이바노프 씨는 “여러 성을 하나의 스코틀랜드 성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작업은 퍼즐 맞추기처럼 어려우면서도 몹시 흥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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