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7세기 밤은 ‘연애의 공간’이었다

  • 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밤의 문화사/로저 에커치 지음·조한욱 옮김/558쪽·2만5000원·돌베개

낮이 노동의 시간이라면 밤은 유흥과 여가의 시간이다. 환한 조명이 불을 밝히고 치안이 유지되는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인공조명이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밤은 공포와 위협의 공간이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15∼19세기 초를 중심으로 영국 등 서유럽에서 사람들이 밤의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나갔는지 주목한다.

산업혁명 전까지 밤은 약탈과 방화, 폭력 등의 현실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어둠의 군주인 사탄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밤의 여신 닉스는 모든 것을 제압하는 신이었고 로마인들은 어린 아이 창자를 먹는 마녀 스트릭스가 밤에 날아다니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17세기 초 영국 시인 토머스 미들턴의 말처럼 사람들이 밤에 ‘잠자고 먹고 방귀 뀌는 것’밖에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통행금지와 야경(night watch) 등을 통해 국가는 밤의 위험을 통제하려 했지만 밤은 그 감시를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밤에 몰래 정부(情婦)를 만나는 유부남을 ‘어두운 놈(Dark Cully)’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부분 국가에서 밤에 간통이 흔했고 겨울밤 젊은 남녀들이 헛간이나 집에서 만나는 뜨개질 모임이 성행했다.

국가가 밤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석유램프와 가스등의 보급으로 밤이 오늘날 같은 불빛을 갖기 시작한 1730∼1830년 사이였다. 저자는 편지와 회고록, 일기 등 20여 년간 모은 자료를 토대로 ‘밤의 문화’를 그렸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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