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자 에프(F)와 피(P) 발음이 골칫거리였다. 우리말로는 둘 다 ‘프’인데 하나는 입술을 깨물고 발음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영어 선생님은 에프 발음을 하기 전에 미리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도록 시켰다. 구강학적으로 ‘으’와 ‘어’의 발음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상도 학생들에겐 이런 영어 발음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선생님은 수업 도중 무작위로 한 줄씩 일으켜 세워 영어 책을 읽어 보라고 지시했다. 제대로 못한 사람은 선생님으로부터 한 대씩 얻어맞았다. 꾀를 부린 아이들은 미리 영어단어 아래에 우리말로 발음을 써놓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선 영어단어(voca-bulary)와 씨름해야 했다. 선생님은 단어 암기를 매일 숙제로 내줬다. 등하굣길에 단어장을 들고 있지 않으면 숨어서 감시하던 영어 선생님에게 붙잡혀 매를 맞아야 했다. 수업 시간엔 합창으로 영어책을 큰 소리로 읽어야만 했다. 심지어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라고 시키기도 했다. 시험문제로 교과서 한 부분을 떼 내 문장 중간 중간을 괄호로 비워놓고 메우도록 했다. 문법과 독해 중심으로 짜여 있는 대학입학학력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선 이런 방법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1981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직후 ‘영어교육 강화방안’을 마련할 것을 문교부에 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다른 나라 말을 익혀야 제대로 언어구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동남아 국가를 보면서 깨달은 모양이다. 같은 해 10월 14일 문교부는 1982년 신학기부터 초등학교 4학년부터 특별활동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1주일에 1시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0년 앞선 1971년 박정희 대통령 때도 영어 조기교육 실시 여부가 화제였던 적이 있었다. 문교부가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에 밀려 조기교육 방침을 거둬들여야 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한국이 세계 최강국이 돼야 ‘red button’이 아니라 ‘빨간 단추’가 국제 공용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글이 국제 공용어가 되기 전까지는 눈물겹도록 영어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이 아직 생생하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만 13세가 환갑’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방 사람이 서울로 이사 오면 아이들은 반년만 돼도 서울말을 배우지만 부모는 10년이 넘어도 서울말을 흉내 내지 못한다고 한다. 오로지 영어 하나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는 시대. 1971년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허용했다면 ‘기러기 아빠’가 줄어들었을까.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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