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에서 옴니버스 작품집이 인기다.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10명에서 30여 명에 이르는 작가가 참여해 각각의 개성을 담은 소설, 시, 산문 등을 단행본으로 묶는 형태다. 작가들이 동인지나 헌정작품집 형태로 책을 내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지만 테마를 중심으로 한 작품집은 순수문학에서는 드물었다.
최근 경향은 출판사가 기획단계에서 특정 주제를 정한 뒤 작가에게 청탁하는 ‘주문형 제작’이며 참여 작가들의 면면도 연령, 작품 경향 등을 떠나 다양해졌다.
○ 테마 소설집 ‘피크’ 출간 즉시 재판 발행 등 인기
얼마 전 출간된 테마소설집 ‘피크’(현대문학)는 신인작가들만 참여했는데도 출간 직후 재판에 들어가는 등 호응을 얻었다. 조만간 소설집인 ‘서울테마소설집’(가제·강), 테마시집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주세요-선운사 가는 길’(가제·시와시학사), 테마산문집 ‘춘천이야기’(가제·문학동네)도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옴니버스 작품집은 시의성이 있는 대중적 주제로 시장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소설가 윤성희 강영숙 씨 등과 함께 테마소설집을 기획한 정홍수 강출판사 대표는 “문학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이지만 주제를 한정해보면 기존 계간지 발표 등과 호흡이 다른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유명 작가 섭외가 힘든 작은 출판사 입장에선 작품집을 내기 위한 돌파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대문학 윤을식 팀장은 “작가군, 기획, 작품의 균질성 3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편집자들로선 재미있는 콘셉트를 잡아 시도해 볼 만한 형태”라며 “매년 다른 주제로 테마소설집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곳에서 보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수록한 점도 독자들의 시선을 잡는 요소이다. 선운사란 특정 공간을 주제로 정현종, 나희덕 시인 등의 테마시집 출간을 앞둔 시와시학사 최명애 대표는 “유명 시인들이 세대를 떠나 같은 테마를 갖고 쓴 시를 모았기 때문에 독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인 작가들은 옴니버스 작품집을 통해 주목도를 높이기도 한다. 2005년 등단한 소설가 염승숙 씨는 “단행본 출간이나 작품 발표에 제약이 따르는 신인들에게는 자기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동인 활동처럼 특정 성격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작품집을 중심으로 연대했다 자유롭게 해체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이다.
소설가 김숨 씨는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결속력이 있기 때문에 동인과는 또 다른 성격으로 작가들 간 유대감이 돈독해진다”며 “개성이 다른 작품이라 해도 동일한 테마 안에서 쓰는 작품이므로 동시대 작가들과 상상력을 비교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마이크로 트렌드로 가고 있는 출판시장은 세분화, 특정화를 통해 작고 확실한 시장을 공략하기 마련”이라며 “문학 출판에서도 테마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연합해 작품을 발표하는 시도는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