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없었던 그 시절 통화하려면 집 아니면 회사전화였다. 무심코 네가 일하는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네가 한 번에 받았지. 남이 받아 넘겨 줄 때가 많았지만 네가 직접 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너는 깜짝 놀라더구나. 나중에야 알았지만 너는 월차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었던 거야. 내가 너의 회사 전화인 줄 알고 걸었던 그 번호가 사실은 집 전화였던 거지. 한두 번 걸었던 번호도 아닌 그 두 번호가 교묘하게 엇갈려 어쩔 수 없이 통화가 됐던 우연을 두고 우리는 신기해했다.
이런 예감은 또 있었다. 내가 티베트와 인도를 6개월 동안 무전으로 여행하고 막 집에 왔을 때, 내가 돌아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식구들 외에 없었다. 그런데 너에게 전화가 온 거야. 그날 진이정 형이 죽었고, 너는 혹시나 하고 나에게 전화했던 거지. 우연일까, 예감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지?
함성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