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재발견 30선]<7>에도의 패스트푸드

  • 입력 2008년 10월 17일 03시 03분


◇에도의 패스트푸드/오쿠보 히로코 지음/청어람미디어

《“화재로 늘 복구공사가 끊이지 않았던 에도에는 ‘쇼쿠닌(목수·미장이·노무자 등)’이라는 장인이 많았는데, 이들 장인들에게 손쉽고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의 먹을거리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배가 부르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므로 적당히 먹은 상태에서 일을 할 수가 있어 능률적이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의 서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포장마차의 음식이 바로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다.”》

日포장마차 서민음식의 뿌리는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대표적 음식인 ‘덴푸라(튀김)’ ‘스시(초밥)’ 등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들 음식이 탄생한 에도 시대라는 시공간의 생활사를 다룬 보고서다. 일본 단기대 생활과학과(식물영양학 전공) 교수인 저자가 에도 시대 식문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를 담았다.

저자는 먼저 이 음식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사회적 상황을 살피라고 권한다. 에도 시대는 일본에서는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된 시기였다.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인 에도 성에 입성해 1603년경 세이이타이쇼군으로 에도 막부를 열었으며 이후 260여 년간 에도는 도쿠가와 정권의 중심에 있었다.

에도는 오랜 전통을 지닌 교토나 나라와 달리 ‘성문 밖에는 억새풀 따위의 이엉으로 지붕을 인 집들이 100여 채 들어서 있던’ 별 볼일 없는 시골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천하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 신흥도시 인구는 최대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당시 런던 인구가 70만 명 정도였다.

그러던 에도에서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가 발생한다. 에도 시내 70%가량을 태워버린 대형 참사였다. 그 결과 도시 복구 겸 제대로 된 수도 조성을 위해 전국에서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화재가 잦은 에도에 빈터를 상가로 조성하며 번화가가 형성된다. 에도로 올라온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일을 찾아온 남성이었다. 혼자인 남성이 으레 그렇듯, 이들에게 끼니를 해결하는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이런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무엇보다 패스트푸드 인기는 에도라는 도시의 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신흥도시니만큼 에도는 특별한 문화라는 게 없었다. 도시 초기에 물자 자체를 교토나 오사카 지역에 의존했으며 문화 역시 옛 도시의 ‘고급 귀족 문화’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덴푸라 스시 소바 등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먹을거리가 인기를 끌면서 에도는 ‘서민이 주도하는’ 문화로 바뀌게 된다. 즉, 멜대를 메고 돌아다니는 행상과 포장마차 등이 도시의 주요 풍경이 되고, 결국 서민음식은 상류층까지 포괄한 대중음식이자 국민음식으로 번지게 된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국내 독자에게 재밌는 일본 음식에 대한 정보를 전해줄 뿐 아니라 음식의 연원과 관련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와 세세한 수치도 함께 담았다.

책에서 언급했듯 음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땅 위에서 오랜 세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가꿔 온 역사와 문화의 결정체’다. 한 사회의 먹을거리 역사를 살피는 것은 역사의 결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길이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그 연구의 의미를 일러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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