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698∼926)의 왕성(王城) 규모에 해당하는 거대한 성 유적(9세기)이 러시아 연해주 중북부 지역에서 발굴됐다.
이는 발해가 연해주 북단까지 뻗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유적으로 그동안 발해가 연해주 남부에 머물렀을 뿐 중북부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러시아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또 고구려 방식의 온돌 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 터도 발견돼 발해가 말갈민족의 나라라는 중국의 주장과 달리 발해가 고구려 전통을 계승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6일 “러시아 연해주 중북부 우수리 강 인근 콕샤로프카-1 발해 평지성(平地城)을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속학연구소와 함께 발굴 조사한 결과 발해 궁성 규모의 대형 건물 터, 온돌 구조, 담장을 비롯해 기와와 토기, 청자 등 각종 유물을 대량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유적은 전체 성벽 길이 1645m, 면적 16만 m²에 이르는 타원형의 대규모 성으로, 남아 있는 성벽의 최고 높이만도 6m, 길이는 10∼14m에 달한다.
대형 건물 터는 대지에서 1m 이상 높게 기단(基壇)을 조성했고, 구들은 좌우 벽을 따라 ‘ㄱ’자 형태로 꺾여 건물 밖의 대형 굴뚝으로 이어졌다. 평면 모양이 ‘曲(곡)’자나 ‘由(유)’자 형태를 띠는 이 같은 온돌 구조는 지금까지는 발해 수도인 상경용천부 등에서만 발견됐다. 이는 발해 중심뿐 아니라 동북부의 변방까지 온돌 구조가 널리 퍼졌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갈이나 금나라 유물이 함께 나오던 다른 발해 성터와 달리 이곳에서는 전형적인 발해 유구와 유물이 출토된 것도 특징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홍형우 학예연구관은 “중국 동북 3성에 있는 발해 수도의 상경성을 제외하고 발해성 중 가장 큰 규모로, 경복궁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행정 치소(지역의 사무를 맡은 기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학계는 지금까지 발해가 러시아와 중국 경계지역의 한카 호(湖) 동남쪽까지만 진출했다고 주장해 왔다. 콕샤로프카 북쪽의 마리야노프카 성에서도 발해 유적이 발견됐으나 유적과 유물의 규모가 작아 러시아 측은 발해 유적이 아니라 발해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발해의 대규모 성이 이 지역에서 발견됨에 따라 발해 영토가 연해주 북단까지 미쳤음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됐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온돌 시설은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지린(吉林)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고구려 온돌 구조와 같았다. 함께 발견된 적갈색의 띠고리 손잡이가 달린 토기도 고구려 토기와 제작 방식이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로써 발해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됐지만 국가의 정체성은 고구려를 계승했음이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