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삶 어우러진 집]<5>시모네 카레나 씨의 삼청동 개량한옥

  • 입력 2008년 10월 22일 03시 00분


왼쪽 위 사진은 집 정면 담벼락의 기와 격자창.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을 닮은 이 창문은 집 안팎 공간을 소통하게 만드는 이 집의 얼굴이다. 왼쪽 아래 사진은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는 계단. 전면 수납공간 가림막에는 카레나 씨가 아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을 붙였다. 오른쪽 사진에서 정면 거실 안 칸막이벽과 가구는 손님 수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오른쪽 부엌의 지붕 위에 오르면 서울 북촌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택균 기자
왼쪽 위 사진은 집 정면 담벼락의 기와 격자창.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을 닮은 이 창문은 집 안팎 공간을 소통하게 만드는 이 집의 얼굴이다. 왼쪽 아래 사진은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는 계단. 전면 수납공간 가림막에는 카레나 씨가 아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을 붙였다. 오른쪽 사진에서 정면 거실 안 칸막이벽과 가구는 손님 수에 따라 변형할 수 있다. 오른쪽 부엌의 지붕 위에 오르면 서울 북촌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택균 기자
카레나 씨가 그린 서울 삼청동 한옥 동-서 단면 드로잉. 그림 제공 모토엘라스티코
카레나 씨가 그린 서울 삼청동 한옥 동-서 단면 드로잉. 그림 제공 모토엘라스티코
탁트인 대청마루 석양을 품고

지하작업실 天窓엔 빗소리가…

이웃 사이 벽 허물고 담에는 창 만들어

“경계가 모호할수록 삶은 넉넉해지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 언덕 위 주택가. 이탈리아 건축가 시모네 카레나(39) 씨와 건축스튜디오 '모토엘라스티코'가 설계한 새 한옥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고즈넉한 삼청동 옛 모습을 지키는 풍경의 일부다.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멀티미디어과 교수인 건축가 카레나 씨는 2001년부터 건축을 주제로 한 쌍방향 미디어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건축가로서는 경기 안양시 안양예술공원과 파주시 헤이리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삼청동 한옥은 2006년 결혼한 신지혜(29) 씨와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한국 친구들이 뜯어말리면서 아파트를 사라더군요. 저와 인생관이 비슷한 의상디자이너 아내가 동의해 줘서 소신을 지킬 수 있었죠. 아내는 제가 만난 최고의 건축주입니다.”(웃음)

2007년 4월 100m²가 조금 안 되는 넓이의 용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시작해 4월 완공했다. 카레나 씨는 오래된 문화를 보존하는 것으로 이름난 이탈리아인답게 한국의 전통건축 원리를 바탕으로 현대적 한옥을 만들었다.

원래 이곳에는 콘크리트 담과 플라스틱 지붕으로 꽁꽁 둘러싸인 집이 있었다.

“지붕 일부 기와를 빼고는 한옥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죠. 창문 수도 적어서 습하고 어두웠습니다. 건물과 창문 배치를 조율해 자연통풍 효과를 살렸던 한옥의 원리를 거스른 집이었어요.”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는 서쪽이 바람과 햇볕이 잘 드는 방향. 카레나 씨는 담을 허물고 아랫집 기와지붕과 같은 높이의 대청마루를 만들었다. 그곳에 앉으니 붉은 석양 아래 경복궁과 청와대가 보였다. 눈앞의 아랫집 지붕 기와와 이어지는 널따란 서울 풍경이다.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아랫집 지붕을 보기 싫어 담으로 가렸죠. 하지만 그 지붕을 끌어안은 이 마루는 누릴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합니다. 경계를 모호하게 할수록 삶은 넉넉해지죠. 게다가 이 동네는 사람들이 가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북촌(北村)이잖아요.”

안방과 거실은 북쪽과 동쪽에 놓인 ㄱ자형 공간에 담았다. 대청마루 뒤 남쪽에는 통유리로 감싼 부엌이 있다. 그 통유리상자 위 옥상에는 철제 빔으로 난간을 두르고 새집을 달았다.

대청마루 한가운데에는 가로 60cm, 세로 1m 크기의 바닥 유리창이 있다. 지하 작업공간에서 올려다보면 그 바닥 창은 햇볕과 빗소리를 들이는 천창(天窓)이 된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향하는 통로에 있는 초록색 계단이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는 길이다.

카레나 씨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지하 공간의 단점”이라면서 “조금이라도 더 빛을 들이기 위해 사각형 천창 둘레에 거울을 붙였다”고 말했다. 이 거울은 실제보다 천창을 더 널찍하게 보이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이 집에는 명패가 없다. 하지만 찾기는 쉽다. 익숙한 처마지붕 골목길 가운데 담벼락에 불쑥 튀어나온 까만색 격자창이 눈길을 끈다. 가로 2m, 세로 90cm의 철제 창틀 안에 기와를 차곡차곡 비껴 쌓아 집 안이 보일 듯 말 듯한 격자창을 만들었다.

“한옥 담에는 창이 없죠. 답답하게 꽉 막힌 옛 집을 허물면서 숨통 하나를 내놓고 싶었어요.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보인다고요? 맞습니다.(웃음) 전면 통기구 디자인이 차의 아이덴티티를 보여 주듯, 이 창문이 제가 만든 한옥의 얼굴입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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