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나이 들수록 줄리엣 마음 가슴에 와 닿아”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로미오와 줄리엣’ 내달 서울공연 앞둔 발레리나 강수진

줄리엣이 온다. 데뷔 무대에서 20여 차례의 커튼콜을 받은 줄리엣,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잇달아 차지해 온 줄리엣, 마흔이 넘은 나이에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줄리엣….

발레리나 강수진(41·사진) 씨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11월 17, 18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공연을 갖는다. 슈투트가르트에 머물고 있는 그를 2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막 연습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오전 10시에 극장에 가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오후 11시입니다. 종일 연습하지요.”

한 시즌에 토슈즈 250켤레를 갈아 치우는 지독한 연습벌레다웠다.

○ “한국선 마지막 줄리엣 공연 될 듯”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독점권이 있고 전막 공연은 드물고, 제 나이도 있고 하니 이번이 아마 한국에선 마지막 줄리엣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 씨는 더욱 연습에 열심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1993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주역무용수로 데뷔한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동양인 최초로 입단한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이듬해 ‘로미오…’로 내한공연을 했어요. 무대에 서기 전 ‘쿵쾅쿵쾅’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요? 항상 떨리지요. 지금은 그 떨림이 무대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대표작이 있지만 관객들은 ‘강수진’ 하면 ‘줄리엣’을 떠올린다. “40대에 10대의 줄리엣 역을 하게 됐는데…”라고 짓궂게 짚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래서 정말 좋답니다”라고 했다. “어렸을 땐 잘 모르고 춤췄어요. 나이가 들고 보니 사랑에 푹 빠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리엣의 모습이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됩니다. 무대에 설 땐 열여섯 살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려요. 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지만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무용수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지요.”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는 사랑에 온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자신과 줄리엣이 닮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이 필요하다면 간을 빼줄 거예요. 그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죠.”

그의 로미오는 남편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선배이자 동료인 터키 태생 발레리노 툰치 소크멘과 2002년 결혼했다.

“남편은 현역 무용수 때 로미오 역도, 티볼트(줄리엣의 사촌오빠) 역도 맡았어요. 실제로 로미오처럼 순정적이기도 하고 티볼트처럼 불같은 성품이기도 해요(웃음). 항상 저를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제가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1999년 동양인 최초로 무용계의 오스카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받았고 2007년 동양인 최초로 독일의 ‘캄머탠처린(궁중무용가)’ 칭호를 받았다. 발레리나로서 ‘다 이루었다’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면 벌써 무용을 그만뒀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연습실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려요.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제게 최고 찬사는 관객들이 전해주는 솔직한 반응입니다.”

30대가 됐을 때 마흔까지 춤출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40대가 되자 전보다 더 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무용을 사랑해서, 무용이 삶이어서 계속 춤춰 왔는데 나이 들수록 춤추는 게 벅차기보다 기쁘고 행복하니 이보다 감사할 수 없다며 강 씨는 웃는다. “전보다 나은 춤을 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그것이 몸으로 느껴질 때는 미련 없이 춤추기를 그만둘 겁니다. 그때까지 계속 춤출 거예요.” 16만∼25만 원. 1577-5266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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