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인트라바운드 여행족”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직장인 정수현(32·여) 씨는 요즘 서해안 여행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달 초 주말에는 친구들과 경기 화성시 제부도에 놀러가 가을 제철음식인 전어 대하 꽃게 등을 먹으며 생일파티를 연 뒤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왔다. 정 씨는 “해외여행은 돈이 많이 드는 데다 피곤하다”며 “서해안을 다닌 뒤로 월요병과 직장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른바 ‘인트라바운드(Intrabound) 여행족(族)’이다. 인트라바운드 여행은 내국인(국내 장기체류 외국인 포함)의 국내 관광을 뜻하는 신조어(新造語)다. 해외여행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나만의 국내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젊은층들, 환율 등 영향 국내여행으로 눈 돌려

작년보다 15% 증가… 만성적자 관광업계 단비

○ 알뜰하고 여유롭고

휴가 때면 일본 홍콩 등지로 떠나곤 했던 직장인 김승우(29) 씨도 최근엔 두 달에 한 번은 혼자 KTX를 타고 부산에 간다. 1박 2일 일정으로 해운대 앞 호텔의 패키지를 이용해 스파를 즐기고 자갈치시장에서 생선회를 먹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인트라바운드 여행(연 여행일 수×여행객 수)은 전년보다 14.5% 늘어 성장세가 2006년(7.2%)의 2배가 됐다.

물론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과 불황의 영향이 크지만, 어학연수와 배낭여행 등 해외 경험이 적잖은 젊은 층들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한국을 ‘재발견’하는 것을 유행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여대생 장혜정(23) 씨는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낯선 국내 여행지의 음식사진 등을 올려놓으면 해외여행 때보다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즐기던 젊은 가족들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낸 덕에 국내 호텔업계는 불황의 그늘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올해 대부분의 국내 특1급 호텔의 여름 패키지 상품 매출은 지난해보다 2배로 뛰었다.

장우종 호텔신라 팀장은 “인트라바운드 여행족을 겨냥해 남산 명동 삼청동 등 서울의 매력을 재발견할 수 있는 장소를 패키지에 포함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도 23일 롯데관광 등 5개 여행사를 ‘대한민국 구석구석 공식 여행사’로 정했다. 이들은 앞으로 국내 여행상품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 “내국인이 와야 외국인도 온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서도 인트라바운드 여행족이 늘고 있다. 자국(自國)의 경제성장에 자부심을 느끼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국내여행을 선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아직도 열악하다. 지난해 한국의 관광수지 적자 규모는 101억3000만 달러(2007년 평균 환율 기준 약 9조4124억 원)로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관광 수입은 57억5000만 달러인 반면 지출은 158억8000만 달러로 7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성적 관광수지 적자를 인트라바운드 여행 활성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진단한다.

한국선진화포럼이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연 ‘만성적 관광수지 적자,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김태경 동남발전연구원장은 “관광수지 적자의 핵심은 국내로 오는 해외 관광객이 적다는 사실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의 국내 관광지는 먹고 노는 데 치중해 내국인조차 외면했다”며 “각 지역이 차별화된 즐길 거리를 갖추면 인트라바운드 여행이 더욱 늘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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