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셰익스피어 작품, 이 정도는 돼야”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2시 59분


28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공연을 앞둔 ‘셰익스피어의 아해들’의 단원들이 ‘햄릿’을 연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28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공연을 앞둔 ‘셰익스피어의 아해들’의 단원들이 ‘햄릿’을 연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제자들에게 연극의 진수 보여주자”

전국 영문과 교수 23명 5년전 창단

매주 모여 맹연습… 햄릿 무대올려

"겟 디 투 어 넌너리. 와이 우드스트 다우 비 어 브리더 오브 씨너스?"(Get thee to a nunnery. why wouldst thou be a breeder of sinners?")

연극 '햄릿'의 한 장면. 오필리어를 밀치는 햄릿의 몸놀림은 다소 둔탁하다. 햄릿의 머리는 희끗하다. 대사도 영어는 영어인데 귀에 낯설게 들린다. 17세기 고어이기 때문. "수녀원에 가버려. 왜 죄인을 낳으려 하는가?"라는 뜻이다.

극단 '셰익스피어의 아해들'은 대학의 영문과 교수M 23명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교수 극단이다. 이들은 11월 1, 2일 오후 6시 강원 강릉시 해람문화관에서 연극 '햄릿'을 공연한다.

햄릿 역의 신겸수 경기대 교수는 52세, 오필리어를 맡은 김현주 숙명여대 교수는 46세다. 나이로는 클로디어스 왕과 거트루드 왕비를 해야 맞을 듯 하다. 연출을 맡은 이혜경 강릉대 교수가 "햄릿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하려고 오히려 과격하고 많은 거리를 움직이는 동선을 짰다"고 말하자, 신 교수는 "요즘에 보약을 먹는다"며 맞받으면서도 "아마 사상 최고령 햄릿일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이혜경 교수는 "학생들이면 왜 그렇게 연기를 '얼빵 하게 하냐'고 소리칠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답답할 때도 있다"며 "그래도 모두 수 십 년 간 셰익스피어를 연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대사 암기력이 뛰어나다"고 치켜세웠다.

이들은 모두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 소속 교수들. 극단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5년 전. 학생들이 올리는 셰익스피어 원어연극제를 지도하던 이들은 "이것저것 지적하다가 아예 우리가 올려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올린 작품이 '리어왕'(2004). 왕년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나선 무대는 생각보다 낯설었다. "학생들 앞에 섰는데 순간 몸이 경직되고 식은 땀이 나더라고요. 학생들 앞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진 거죠."(신웅재 광운대 교수)

이들은 원칙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당시 쓰여진 17세기 고어를 사용한다는 것과 복장도 당시 공연에 사용했던 르네상스풍으로 직접 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험적 해석보다는 원전대로 풀어간다.

"교육적 효과라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학생들에게 전범이 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고 했죠. 여러 가지 해석과 실험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기본은 클래식이 되어야하니까요." (이혜경 교수)

의상 제작도 이혜경 교수가 직접 원단을 사서 제작한다.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지만 시중에 있는 공연 복장들은 르네상스 풍을 제대로 구현한 것이 없는데다 가격도 수 십 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배우 개런티가 없는 이들에게 의상비는 가장 큰 지출이다. 원단을 사는 데만 300여만 원이 들어간다.

교수 극단을 꾸리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연습시간을 내는 것이다. 매년 2월에 작품을 선정하는 이들은 3월부터 약 6개월간 일요일에 모여 연습을 한다. 서울 인천 강릉 수원 등 각 지역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이 때 말고는 시간이 없다. 연습은 각 학교 강당을 이용한다.

다들 너무 잘 알다보니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해석이 부딪히는 것이 대표적. 워낙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되는 셰익스피어다보니 종종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대본으로 쓰는 '햄릿'이 1604년 또는 1623년 판본인가를 두고 가벼운 논쟁이 일기도 했다.

지난 해 '맥베스'를 올렸을 때는 배우들이 되도록 배역에 몰입하지 않으려 애쓰는 일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맥베스'가 불운의 상징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연습 때도 '맥베스'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금기시 된다. "마녀의 주문 같은 경우는 당시 마녀들이 사용하는 주문을 인용해 공연 중에 악령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기록도 많아요. 그 대사를 가능하면 제대로 발음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김현주 교수)

매주 일요일을 헌납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남다른 보람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딱딱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교수님이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게 됐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겨주면 너무 기쁩니다. 사실 교육은 소통에서 시작하거든요."(조영학 경기대 교수) 무료공연. 02-2290-2289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