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출판계 불황탈출 안간힘… 날자! 다시 날자꾸나

  • 입력 2008년 11월 1일 02시 58분


“이 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가끔 막 나온 책에서도 익숙한 향취가 난다. 기존에 나온 책을 개정했거나 절판됐다 부활한 책이다.

출판계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개정이나 복간되는 책이 많다. 새 책을 펴내고 마케팅할 여력이 모자라는 데다, 이런 책들은 시장 검증을 한 차례 거쳤다는 장점이 있다. 판권 계약이 끝난 스테디셀러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판권 계약은 보통 5년 정도 하는데 반응이 괜찮은 책은 판권 만료와 동시에 여러 출판사가 다시 경쟁을 벌이는 게 요즘 추세”라고 말했다.

개정판 중에는 기존보다 훨씬 풍부해진 것들이 많다. 아울러 절판된 명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독자로선 고마운 일이다. 최근 눈길을 끄는 개정 및 복간 책을 정리했다.

○ 업그레이드 개정판

올해 6월에 나온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흐름출판)은 소리 없이 강한 기업들의 성공사례를 소개한 책. 10년 만에 다시 나온 개정판이지만 그간 변화한 세계 동향과 사례를 붙여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업그레이드된’ 개정판은 최근에도 많다. 20일 발행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는 1994년 고 최순우 선생이 낸 베스트셀러. 개정판에서는 모두 130여 장에 이르는 흑백 사진을 안장헌 사진작가의 작품을 포함해 컬러로 바꾸었다. 김홍도의 ‘군선도’, 정조의 ‘국화’ 등에 관한 작가의 글 10꼭지를 더 늘렸으며, 구판에는 없던 이항복 초상화, 이재 초상화 등도 보완했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대공황 전후 세계경제’는 개정판보단 속편에 가깝다. 영국과 미국, 이탈리아의 세 경제학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2001년 국내에 소개된 ‘대공황 전후 유럽경제’(1997년)의 개정판. 하지만 이전 책이 1920, 30년대 유럽경제사에 초점을 맞춘 반면 개정판은 시야를 세계로 확장해 살펴봤다.

지난달 출간된 칠레의 전설적 저항가수의 삶을 기록한 평전 ‘빅토르 하라’(삼천리)는 1988년 번역됐다가 절판된 작품. 최근 아내이자 저자인 조안 하라의 후일담을 덧붙여 새롭게 나왔다.

○ 노벨상이나 선거 바람 타고 재출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의 ‘사막’은 노벨상 특수를 타고 최근 다시 나왔다. 이 작품은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995년 책세상이 번역 출간했으며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새로 나왔다. 데뷔작 ‘조서’(민음사)가 문명의 난폭함과 현대인의 정신적 공황을 다룬 초기 대표작이라면, ‘사막’은 문명에서 탈출해 자연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후기 대표작이다.

지난달 22일 출간된 ‘존 매케인-사람의 품격’(21세기북스)은 올해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이 32가지 사람의 품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2006년 나왔던 ‘인격이 운명이다’에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존 매케인’을 내세운 제목으로 바꿔 다시 내놨다.

영화 개봉을 맞아 나온 개정판도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모던보이’는 2000년 ‘제5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이지민 작가의 장편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가 원작. 영화 제목을 제목에 넣어 ‘모던보이-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바뀌어 나왔다.

○ 추억을 가져다주는 책들

올더스 헉슬리는 ‘20세기가 낳은 천재 작가’라 불렸던 영국 소설가. 헉슬리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멋진 신세계’다. 1932년 발표돼 문명과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려 최고의 미래소설이라 찬사 받았던 이 작품은 국내에도 지금까지 출판사 10곳 이상이 펴냈다.

자연 그대로의 세계를 그려 ‘멋진 신세계’와 대척점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 헉슬리의 마지막 작품 ‘아일랜드’(1962년)는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출간됐다 명맥이 끊겼다. 출판사(고려원미디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일 청년정신이 완역본으로 다시 내놨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과 함께 각광받았던 ‘기호의 제국’(산책자)도 다시 나왔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쓴 해체주의적 글쓰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저작은 절판된 것을 복간하며 정화열 미국 모라비언대 명예교수의 비평을 덧붙였다.

1970년대 문학 애호가의 지지를 받았던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쓴 ‘휘페리온’도 눈에 띈다. 을유문화사가 1975년 100권으로 마무리했던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올해 새로 펴내면서 11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횔덜린 문학을 연구해온 장영태 홍익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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